완결된 형태보다 내재된 의도를 드러내는 작품집

말레이시아의 건축가 Kevin Mark Low의 작품집 <small projects>. 건축전문사진작가의 사진 없이 건축가의 사진, 글, 스케치, 도면으로 꽉 채워진 작품집. 오죽하면 크레딧 표시에 AUTHOR / PHTOGRAPHY / tYPOGRAPHY / DESIGN: KEVIN MARK LOW라고 써 있다.

자신의 작업을 가장 잘 아는 것은 건축가 자신이다. 무엇을 어떻게 의도했고 어떻게 해결했고 그 결과가 어떠했는지에 대한 과정을 가장 정확하게 아는 목격자인 셈이다. 유일한 목격자가 스스로 기록자가 되었을 때, 자료는 명확해지고 힘을 갖는다. 그렇다고 자료의 중요도에 따라 가감하고 해석하고 위계를 설정하는 편집자의 시선이 필요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제대로 각이 잡힌 전문 사진은 하나도 없지만, 사진 하나하나에 건축가의 의도가 담겨있고 그 옆에 스케치와 글로 자세한 설명을 더하고 있다. 싱크대 선반, 욕실 유리문에 대한 디테일 설명가지 덧붙였으니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갈 듯. 무엇보다 편집증적인 자료 기록에 놀랍고 건축물의 세세한 부분에 자신의 의도와 생각을 모두 담아 하고싶은 말이 넘쳐난다는 게 놀랍다. (같은 이유로 너무 세세한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어서 아쉽기도.)

무엇보다 보여주려는 대상이 건축물의 완결된 형태에 있지 않다는 태도 자체가 매끈한 작품집보다 훨씬 더 설득력있다. 힘 있는 건축사진과 정돈된 도면, 잘 계획된 스케치를 보여주는 작품집도 성격에 따라 의미가 있지만, 폼 잡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그런 면에서 <small projects>는 작은 프로젝트라 하더라도 그 안에서 담긴 건축적인 내용을 끄집어내는 것이 얼마나 설득력있는가를 잘 보여주는 로컬 아키텍트의 작품집이다. 건축가에게나 편집자에게나, 저널에서 보여주는 컨셉 스케치, 도면, 사진, 소요, 개요의 정형화된 패키지 대신 다른 방식으로, 다른 도구로, 다른 이야기를 보여주는 시도가 필요한 때다.

노만 포스터, 우주선 애플호를 띄우다

애플 사옥 조감도, 노만 포스터

아이폰을 처음 사용했을 때 놀라움은 기계 자체 때문이 아니었다. 손 안에서 접속한 트위터, 페이스북, 아이튠즈와 앱스토어의 수많은 어플리케이션과 음악, 방송은 그야말로 새로운 세상이었다. 언제 어디서든 수많은 네트워크와 콘텐츠에 접속 가능한 상황. 아이폰은 쉽고 단순한 방식으로 이를 연결해주는 도구였고 그 세상은 애플이 만들어낸 하나의 생태계였다. 물론 아이폰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아이폰 뿐만 아니라 애플의 모든 제품들이 그랬다. 겉으로 드러난 하드웨어는 언제나 간결했다. 그 결과 디자인도 간결했다. 간결한 만큼 아름다운 유선형의 형태는 소유자를 뿌듯하게 하는 자부심도 주었다. 그 배경에는 새로움을 추구하며 간결함을 실현하기 위해 극한까지 밀어붙인 스티브 잡스가 있다. 우주를 놀라게 할 듯한 발상과 새로운 것을 꿈꾸며 애초에 불가능이나 한계를 염두에 두지 않고 달려갔던 그의 열정은 혁신과 창의, 감성이라는 말로 대변되었다. 스티브 잡스는 단순한 기계 자체를 만든 것이 아니라 기계를 통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었고, 우리의 감성을 건드렸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가 ‘기계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라고 말한다.

애플 사옥, 노만 포스터

지난 해 10월 스티브 잡스가 세상과 안타까운 이별을 고한 후, 인터넷에서는 애플 사옥의 조감도와 도면이 화제가 되었다. 스티브 잡스에 대한 애도의 여운이자 그가 만들고자 했던 애플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다. 쿠퍼티노에 지어질 예정인 이 사옥에 대해 스티브 잡스는 ‘우주선이 착륙한 것 같은 훌륭한 사옥’이라는 표현으로 사람들에게 또 다른 상상력을 불러일으켰다. 넓은 대지 위에 낮게 깔린 4층 높이의 단순한 원형 띠 모양 건물이다. 전면 유리의 사용으로 투명함을 강조한 이 건물을 설계한 사람은 영국의 대표적인 건축가 노먼 포스터다.

애플 사옥, 노만 포스터

노만 포스터는 1980년대 IBM 사옥, 상하이 뱅크 등 하이테크 건축으로 이름을 알린 건축가다. 하이테크 건축은 당시 최신 기술과 재료를 건축 디자인과 결합해 표현한 양식으로, 유리의 투명성과 철, 알루미늄과 같은 금속 재료를 사용하여 구조와 설비를 노출하는 기계 미학을 드러내는 사조다. 그러나 노만 포스터의 건축이 단순히 기계 미학을 드러내는 것은 아니다. 코메즈 뱅크 본사 사옥이나 거킨 빌딩으로 불리는 스위스 리 빌딩, 런던 시청사와 허스트 타워 등 독특한 형태와 강렬한 구조를 드러내는 그의 건축은 생태학적인 접근과 자연친화적인 관점, 그리고 기술을 통해 친환경 건축을 실현한 결과물이다. 거킨 빌딩의 독특한 형태는 바람의 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한 결과이며 런던 시청사의 기울어진 원형돔은 일조량을 정밀하게 계산해 직사광선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다. 허스트 타워의 독특한 패턴은 환기와 구조를 고려한 대각선 구조 시스템을 그대로 노출한 것이기도 하다.

당시만 해도 오피스타워는 밀폐된 공간 안에서 모든 설비를 시스템으로 통제하는 것이야말로 기술의 진보라고 자랑했지만 포스터는 모든 것을 기술적으로 통제하는 방식 대신 자연 환기와 자연 통풍, 실내 정원을 통해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쾌적함을 높이는 친환경 건축을 추구했다. 자연광을 극대화하기 위해 유리를 사용해 밝고 투명한 공간을 만들어내면서도 그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온도 상승과 직사광선의 문제를 정교한 센서와 자동 패널장치, 태양열전지 같은 테크놀로지로 보완했다. 그는 생태학적인 철학을 바탕으로 예술과 기술을 결합한 건축을 만들어 온 건축가다.

애플 사옥 평면도, 노만 포스터

지역과 환경에 따라 자연과 공생하는 유기체로써 건축을 바라본 노만 포스터와 스티브 잡스가 함께 손을 잡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휠 하나면 모든 것이 작동되는 아이팟처럼, 넓은 자연의 땅에 그린 단 하나의 링. 넓은 대지 위에 단지 20%만을 건축이 점유하고 자연에 둘러싸이게 한 것이나, 커다란 타워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보다 대

애플 사옥 평면도, 노만 포스터

지에 낮게 깔린 커다랗고 투명한 원 하나를 그어 생태학적인 방식을 추구하는 설계안은  서로의 철학과 방식에 가장 잘 맞는 결과물이었을 것이다. 특히 겉으로 단순해 보이는 이 투명한 유리 건물은 높은 완성도를 기대하게 하는데, 에너지 낭비의 원흉으로도 꼽히는 전면 유리의 사용을 세밀하고 정교한 기술로 친환경적으로 보완해온 노만 포스터의 태도와 극한의 디테일을 추구해온 애플의 방식 때문이다.

원은 중심에서 가장 최단거리를 이은 도형이자 군더더기 없는 완결체다. 중심이 없으며 수평적인관계를 드러내기도 한다. 그렇다고 추상적인 도형이 꼭 합리적이며 기능에 적합한 것은

애플 사옥 단면도, 노만 포스터

아니다. 당장 사용자의 동선부터 해결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애플과 노먼 포스터의 행보로 볼 때, 그 간결함과 완벽함을 실현하기 위한 기술적인 보완과 수고로움은 어쩌면 당연한 일처럼 보인다. 한 예로 스티브 잡스는 15개의 유리판으로 만든 뉴욕 애플스토어의 투명한 큐브를 단 4장의 유리판으로 실현시키고자 집요한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다. 결국 9개의 유리판으로 실체를 드러냈지만 잡스의 간결함에 대한 추구는 그가 꿈꾸는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기술을 동원하는 분명한 태도를 보여준다. 노먼 포스터 역시 어떤 디테일도 중요하지 않는 것이 없다는 잡스의 말을 공유하며 건축주 이전에 열정과 창의력으로 무한한 가능성을 이끌어내는 그와의 작업을 기리고 있다. 아마도 애플 사옥은 이면에 가장 복잡하고 새로운 기술을 동원한 가장 간결하고 투명한 건물로 실현될 것이다.

애플 사옥, 노만 포스터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아직 계획단계에 머무르는 도면, 그것도 전문적인 정보를 담고 있는 건축 도면에 수많은 상상력을 담고 있는 사람들이다. 수많은 상상력을 이끌어낼 수 있는, 수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토대가 바로 애플의 힘, 스티브 잡스의 힘이 아닐까. 스티브 잡스가 마지막까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기술로 만들어낼 수 있는 세상에 대한 우리의 꿈이 아닐까?

글_임진영(건축전문기자)

+MUINE 1201

두 건축학자의 ‘아파트 탈출기’, 아파트와 바꾼 집/ 한겨레 서평

박철수ㆍ박인석 지음/동녘ㆍ1만6000원

살면서 자기 집을 짓기 위해 건축가를 만날 일이 한 번이라도 있을까? 사람들에게 건축가는 그렇게 먼 존재다. 우리의 주거 형식은 진화를 거듭해온 아파트가 장악한 지 오래고, 주거 시장은 평당 250만원의 춥고 야박한 집장수의 집과 평당 650만원 이상이 드는 건축가의 ‘작품’ 주택으로 양분된다. 집에 대한 이야기는 신문 문화면과 경제면의 분류만큼이나 극명하게 분리된 두 개의 세상이다.

땅콩집은 이 경계를 깬 첫 사례다. 아파트 전셋값 3억, 손에 닿을 듯한 현실적인 금액으로 내 집, 그것도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을 지을 수 있다는 실험의 반향은 컸다. 아파트 외에 다른 선택은 생각 못했던 사람들은 비로소 집에 대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지금 우리에게는 주거 형식의 다양한 대안 모색과 주거 문화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아파트와 바꾼 집>은 주거건축을 전공한 두 건축학자 박철수 서울시립대 교수와, 박인석 명지대 교수의 집짓기 이야기다. 두 사람이 경기도 용인 죽전에 이웃해서 지은 두 집 ‘살구나무집’을 지은 과정은 서울 40평대 아파트면 단독주택으로 바꿀 수 있다는 생각에서 벌인 ‘중산층의 집짓기’다. 아파트로 편중된 우리 주거 풍토가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는 동기로 출발해, 오랫동안 우리의 주거를 연구한 주거학자답게 ‘좋은 집’에 대한 원칙을 세우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것은 ‘보통’의 집이다. 말 그대로 특별하지 않은 적정 수준의 집이다. 책에서는 평당 공사비 250만원과 650만원으로 양극화된 주택시장에서 땅콩집보다는 비싸지만 보통 수준의 공사비인 평당 500만원으로 지은 건실하고 품격을 갖춘 집을 짓겠다는 의지를 실현시키는 과정이 세세하게 담겨 있다. 돈이 충분해서도 아니다. 아파트와 주택을 맞바꾸면서 돈을 융통하는 과정은 읽는 사람마저 아슬아슬하다.

특히 이 책은 집에 대한 사회학을 통해 우리 주거 환경을 피폐하게 하는 주범으로 아파트가 아니라 단지가 문제임을 지적한다. 그리고 집 짓는 과정에서 벌어질 수 있는 수많은 절차와 세세한 예산을 참고하게 했다. 또한 유지비가 적게 들고 건실한 집이 갖추어야 할 조건들을 세밀하게 제시해 주거건축의 전문가들로서 깊이 있는 제안을 담고 있다. 단열, 설비, 시각적 프라이버시의 침해 등 단독주택에 대한 오해와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건축 장치들을 상세하게 설명한다. 작품이라는 타이틀에 매여 있는 건축가들에게는 아파트와 경쟁할 수 있는 새로운 ‘보통의 주거’를 촉구하고, 중류층에게는 아파트 대신 선택할 수 있는 대안적주거 형식의 한 사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전문가나 건축주 모두 꼭 읽어야 할 책이다. 자신들의 요구를 건축가에게 반영하는 구체적인 부분도 집을 짓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가이드가 될 것이다.

실용적인 집을 짓기 위한 다양한 해법과 대안이 필요하며, 주거 유형을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어져야 한다는 것은 이 책이 던지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다. 지금까지 낭만적인 인문학 영역에서 집을 이야기했다면, 이제는 구체적인 수치와 방법론을 통한 논의로 집에 대한 우리의 기준선을 높여야 할 때다. ‘건실하고 품격을 갖춘’ 건강한 집을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

임진영(건축전문기자)

+ 한겨레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511675.html

디자인에 디자인을 묻다 2011 광주디자인비엔날레 / Style Chosun 1110

건축가 승효상과 중국의 예술가 아이 웨이웨이가 총감독을 맡아 디자인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2011 광주디자인비엔날레가 지난 9월 2일 시작해 10월 23일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이름 있는 디자이너의 작업에서 이름 없는 디자인 작업까지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우리 사회 전반에 걸친 디자인 이슈를 다루는 이번 전시는 디자인의 경계를 확장하고 전시에 관한 통념을 깨뜨리며 흥미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 왕펑의 고금 연주와 함께 김복희 무용단의 퍼포먼스가 펼쳐진 개막식 모습

디자인, 공적이 되다 세련된 외관과 명쾌한 구조, 아이디어가 넘치는 디자인 제품을 볼 때 우리는 그 아름다움에 매혹된다. 그럴 때마다 브랜드에 경외를 보내고 디자이너가 펼치는 끝없는 창의력의 향연에 감탄하게 된다. 디자인의 막강한 힘은 언제부턴가 기업의 성장 한계를 넘어설 돌파구로 여겨졌다. 양적인 성장에 몰두해온 도시에도 디자인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도시의 브랜드, 상징과 함께 수많은 디자인 정책과 전략이 생겨났다. 유명 건축가의 랜드마크를 세우고 벽화를 그리며 가로등과 휴지통에 장식을 더했다. 마치 이 한 병이면 모든 질병이 말끔하게 사라진다는 만병통치약의 환상처럼, 디자인은 우리 시대의 화두가 되었다. 그러나 디자인 정책이 남발되면서 비판도 함께 쏟아졌다. 수많은 예산을 들인 정책은 시민들의 냉정한 비판과 마주했고 예산 낭비라는 정치적 쟁점이 되기도 했다. 도시 구조를 고려하지 않은 예술품, 화려한 겉포장, 과도한 디자인으로 뒤덮인 도시를 보며 ‘과연 누구를 위한 디자인인가’라는 질문이 제기되었다.

디자인이 디자인이면 디자인이 아니다 올해 광주디자인비엔날레는 지금 우리 주위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디자인 정책과 정의에 의구심을 보내며 출발한다. 주제는 노자의 도덕경 첫 구절인 ‘도가도비상도(길이라 부르는 길이 다 길이 아니다)’를 ‘그림 도(圖)’로 바꾼 ‘도가도비상도(圖可圖非常圖)’이다. ‘디자인이 디자인이면 디자인이 아니다’라는 이 선문답 같은 주제는 결국 ‘디자인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우리는 디자인의 본질에 대해 얼마나 알고 그 많은 전략을 생산해내는 것일까. 가시적인 정책에만 관심을 두다 보니 반(反)디자인 정서도 생겼다. 또 디지털 환경의 변화도 디자인의 새로운 정의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도가도비상도’는 이 디자인 과잉의 시대에 디자인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우리 삶의 모습을 사유하기 위해 제안한 주제다. 21세기 디자인은 단지 보기 좋은 형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삶을 풍요롭게 하고, 오브제가 아닌 장소와 사람의 관계에 대한 관심으로 전환한다는 의미다.” 총감독을 맡은 건축가 승효상 씨는 이제 디자인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할 때라고 말한다.
디자인의 정의를 되묻기 위해, 승효상 씨와 아이 웨이웨이가 던진 키워드는 바로 ‘이름’과 ‘장소’다. “이름을 통해 디자인이 특정 전문인의 전유물이 아님과 더불어 디자이너의 정체성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또 장소에 기반한 디자인의 등장에 주목하고자 했다.” (승효상) 브랜드 파워를 갖는 이름 있는 디자인 작업(유명, Named Design)과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우리 삶에 영향을 주는 이름 없는 디자인(무명, Unnamed Design), 여기에 인간 사회의 복잡 미묘한 관계에 주목하며 특정 단위의 정체성과 디자인의 관계를 고찰하는 커뮤니티, ‘도가도비상도’에 대해 적극적인 해석을 이끌어내는 주제전, 그리고 실제 광주 도심에 설치된 공공시설물을 통해 장소성에 깊이 관여하고 있는 광주 폴리까지 모두 6개의 전시로 구성되었다.
그러나 전시는 카테고리별로 전시장을 나누는 대신 모든 섹션을 섞어 ‘비엔날레 시티’라는 하나의 도시를 만들어냈다. 비엔날레 시티를 디자인한 건축가 프란시스코 산인은 “디자인의 물질성뿐만 아니라 사회에 대한 영향과 메커니즘에 대해서도 질문하고자 했다”라는 말로 그 배경을 설명했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중성적인 전시 공간 대신 ‘다양한 입장과 생각이 교차하는 장소, 복잡하고 무질서하지만 소통과 교환이 가능한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각각의 전시장은 일련의 군집을 이루는 클러스터 시티, 중앙의 열린 공간에서 주변으로 연결되는 네트워크 시티, 광주의 한 지역을 재현한 랜드스크립트 시티, 능률적으로 계획된 그리드 시티 등 4개의 도시 유형으로 구성했는데, 바로 우리 삶의 총체적 환경을 보여주는 도시 그대로의 공간이다.

디자인을 탐험하는 1백1가지 방법, 비엔날레 시티 광주디자인비엔날레관 앞마당에서 가장 먼저 우리를 맞는 것은 아이 웨이웨이의 ‘필드’다. 명나라 초기 청화백자 양식의 자기를 구워 전통적인 방식으로 산업 부품인 파이프를 만들고 이를 기계적으로 연결함으로써, 전통의 세심한 실험과 현대 기술의 규칙성, 효율성을 통해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환경을 암시한다. 그 옆으로 가와쿠보 레이의 ‘꼼데 가르송의 여정’은 지금껏 꼼데 가르송이 추구해온 새로움이라는 가치를 실험적인 이미지의 거대한 벽으로 구축했다. 여기에 뉴욕의 젊은 건축가 안지용, 이상화가 제안한 ‘바이크행어’가 전시장 외부에 설치되어 도시 틈새를 활용한 무동력 자전거 거치대의 활용 가능성을 보여준다.
전시장에 들어서면서 관람객은 각기 다른 도시를 여행하듯 5개의 전시장을 방문하게 된다. 우리 앞에 놓인 낯선 도시의 지도처럼 전시장은 유명, 무명의 작품과 커뮤니티, 광주 폴리,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펼쳐낸다. 관람객들은 종합 일간지의 정치·경제·사회·문화면과 같은 유형으로 느슨하게 엮인 전시장을 돌며 각각의 주제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수집하고 탐색할 수 있다. 먼저 강렬한 사운드와 영상을 통해 지구 환경 문제를 다루는 디제이 스푸키의 ‘테라노바; 남극교향곡’과 ‘나우루 비가, 소리와 지형의 초상’, 3천 년 이상 전승된 중국의 고금을 통해 미묘한 소리와 울림을 유지하며 동시에 어떻게 새로움을 추구할 것인가를 묻는 ‘중국 고금 예술’, 숲을 나무의 크기와 성장 속도에 따라 시침, 분침, 초침으로 구성해 시각적인 이미지와 소리로 치환해 경험하게 한 김아연, 박승진의 ‘숲, 귀 기울이다’ 등이 각 전시장에 전시되어 ‘도가도비상도’라는 주제를 환기시킨다.

유명 vs 무명 브랜드의 유명세와 부침, 영향력을 통해 디자인에서 이름의 의미와 역할을 다시 생각해보도록 제안하는 ‘유명’과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디자인을 소개하는 ‘무명’은 이번 전시에서 가장 중심적인 이슈다. 유명한 것과 유명하지 않은 이름이 한데 모이면서 관람객들은 익히 알고 있는 디자인과 브랜드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할 기회를 갖는다. 도시의 할렘 지역을 수준 높은 건축물을 통해 활력 넘치는 도시로 개조한 콜롬비아 메데인 시의 사례와, 효율성을 극한대로 추구해 수익성은 좋으나 완벽하게 비인간적인 가상 도시 ‘슬레이브 시티’를 통해 도시의 가치를 되묻기도 하고, 최근 대지진이 일어난 동일본 지역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기부를 이끌어내고 있는 ‘와와 프로젝트’처럼 디자이너의 사회적 역할을 확장하기도 한다. 통계 자료를 증강현실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해 세계사의 흐름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보여줌으로써 세계관에 만연한 신화와 싸우는 ‘갭마인더 월드’ 역시 흥미로운 작업이다.
‘무명’ 섹션의 작품은 디자인의 경계를 과감하게 확장하며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이슈를 다룬다. 디자인을 개인적인 창작물로 보고 시장성과 소비자의 반응에 따라 가치를 매기고 평가하는 디자인의 신화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시도다. 이집트 시위대가 자체적으로 제작한 평화 시위 지침서인 ‘비폭력 혁명 디자인’이나 1백달러짜리 지폐의 위조 방지 조치와 위조에 필요한 재료를 함께 보여주면서 화폐 디자인뿐만 아니라 위조라는 사회적 이슈에 대응하는 방식을 동시에 고민하게 하는 작품도 있다. 세계적인 금융 기업 UBS가 자사 직원들에게 배포한 드레스 코드를 바탕으로 스위스 은행에서 허용되는 좋은 예와 나쁜 예를 실제 옷으로 재현한 ‘스위스 은행 드레스 코드’는 패션의 사회적 의미를 들춰낸다.
세계의 도시 로고를 지도에 한데 모아 도시가 자신의 시각적 정체성을 세우기 위해 고심한 흔적과 한국의 도시 기념품이 보여주는 불완전한 이미지를 드러내는 작업, 알프스 마을이 관광객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어떻게 신화를 만들고 개조되고 있는가를 소개하는 ‘알프스 마을 이미지 디자인’을 통해 디자인과 관광 사이에 놓인 불편한 관계를 주목하기도 한다. 어기에 온라인 정보 공유를 통해 자력으로 건물을 지을 수 있게 한 ‘위키하우스’와 전형적인 한국 아파트 구조를 재현하고 그 안에 공동체라는 이름 너머의 어두운 면을 드러내는 ‘훔쳐보기’ 등 흥미로운 커뮤니티 작업이 유명과 무명의 틈새를 파고들고 있다.

올해 광주디자인비엔날레가 묻는 것 4개의 비엔날레 시티, 1백40여 개의 작품은 세련된 디자인 제품의 열악한 제조 환경 혹은 자원을 둘러싼 분쟁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디자인 프로세스나 정보를 주는 방식, 자체적인 상품 개발과 유통·배급에 대한 문제, 디자인이 포장하고 있는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이슈 등을 제시한다. 이는 ‘우리 사회의 복잡하고 정교한 시스템 안에서 디자인이 어떻게 작동하고 어떤 역할을 해내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뿐만 아니라 디자인이 형식이나 기능이 아닌 아이디어임을 강조한다. 시각과 사용의 문제로 여겨졌던 디자인 통념에서 벗어나 소리와 다양한 감각으로 확장한 것, 패션·건축·산업디자인 등 전통적인 디자인 장르의 구분을 해체하고, 분류 체계에 따라 일방적인 감상을 유도하는 전시 체계를 탈피하는 등 기존의 통념을 깨뜨리는 방식도 올해 디자인비엔날레의 특징이다.
다소 불친절하지만 우리가 여행하면서 만나는 낯선 도시의 화려한 겉모습과 어둡지만 생동감 있는 골목길을 발견하듯, 총체적인 삶에 깊숙이 들어온 디자인 이면의 의미를 탐색하도록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아름답다는 것과 예쁘다는 것은 다르다. 예쁜 것은 달콤할(sweet) 수 있지만, 아름답다(beautiful)는 것은 감동을 받는 것이다.” 디자인의 본질은 가시적인 것이 아님을 말하는 승효상 씨는 이 전시를 통해 디자인의 배후가 자신의 삶에 얼마나 영향을 주는지 발견했으면 좋겠다고 강조한다. 다소 부족한 설명과 자료, 약한 시각적 효과가 아쉬움이라면, 생각의 경계를 확장하고 우리가 미처 도달하지 못한 디자인에 대한 질문으로 우리를 이끌어낸다는 점에 이번 디자인비엔날레의 흥미로움이 있다. 승효상 씨의 말대로 “그 시대 상황에 따른 주제를 통해 담론을 형성하고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비엔날레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글 임진영(건축 전문 기자)

+ Style Chosun 2011년 10월 vol.64  http://style.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9/30/2011093001334.html

모던 코리아의 유산, 건축가 이타미 준 / Style Chosun 1109

한국과 일본의 경계에서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었던 건축가 이타미 준이 지난 6월 26일 향년 75세의 나이로 세상에 이별을 고했다. 경계를 넘어 자유롭게 흐르던 그의 건축은 남아 자연의 내재적 존재감과 지역에 대한 통찰을 담은 감동을 전하고 있다.

▲ 1 포도 호텔, 제주, 2001 2 M 빌딩, 도쿄, 1992. 3 제주 핀크스미술관, 석미술관, 제주, 2004

제주에 가면 그의 건축물이 있다. 포도 호텔, 제주 핀크스 클럽 하우스와 수·풍·석미술관, 두손미술관과 방주교회, 그리고 비오토피아 타운하우스 등 건축가 이타미 준의 대표작은 제주에서 유독 빛이 난다. 아름답지만 혹독한 자연환경과 지역 특유의 풍토가 강한 제주야말로 자연에 반응하고 건축의 야성미와 추상, 엄숙함과 고요함을 통해 건축의 본질적인 감동을 전하고자 하는 이타미 준의 뜻을 가장 잘 드러내는 곳이기 때문이다. 왕성한 활동으로 새로운 시도를 멈추지 않았던 70대 노장 건축가는 이제야 비로소 자유로운 건축을 하고 있다는 말이 무색하게, 지난 6월 26일 향년 75세의 나이로 세상에 이별을 고했다.

이타미 준이라는 이름, 경계인의 삶 그의 본명은 유동룡이다. ‘이타미 준’이 예명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귀화를 포기하고 일본에서 건축 사무소를 내기 위해 만든 예명은 그가 해외에 나갈 때 처음 이용한 이타미 공항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한국 사람, 일본 사람을 떠나 세계인으로 살겠다는 다짐이담긴 이름이다. 여기에 일본에서 깊은 교류를 나눈 작곡가 길옥윤과 같은 한자인 준[潤]을 써서 완성한 ‘이타미 준’은 건축가로서 그의 이름이 되었다. 일본에서 그는 언제나 유동룡이었지만 한국에서는 이타미 준으로 불린 재일동포 2세의 삶을 살았다. 그는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이방인이었다. 그러나 이타미 준이 예술가로서, 개인으로서 뿌리내리고 있는 곳은 언제나 한국이었다. 조국에 대한 그리움으로 찾은 한국 여행에서 그는 한국의 고미술과 예술품이 지닌 기품과 온화함에 매혹되었다.
조선의 민화와 달 항아리, 가구와 소품을 수집하며 한국의 미에 대한 심미안을 발전시키기도 했다. 그는 어느 누구보다 조선의 예술에 애정을 보인 건축가였다. 일본 건축에서 자연과 대화를 나누는 방법과 무(無)의 느낌을 익혔다면 한국 건축에서는 자연과 공존하는 중용사상과 멋이라는 정신적인 깊이, 은은한 온기와 소박함을 배웠다고 말한 바 있다. 경계에 서 있기 때문에 더 강렬하게 뿌리를 의식할 수 있었던 이타미 준의 태도는 결과적으로 그의 건축에 한국성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아내게 했다. 2003년 파리의 국립기메동양미술관에서 열린 전시회 제목은 이타미 준의 정체성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낸다. 그는 ‘일본의 한국 건축가, 이타미 준’이다.

 

돌, 흙, 물과 바람을 담은 건축 이타미 준의 초기 건축에서는 건축의 야성미가 묻어난다. 그는 돌, 흙, 나무, 바람, 물과 같은 자연적인 소재에 관심을 두었는데, 거친 질감이 드러나도록 해 ‘현대 건축에 결여된  따스함과 야성미’를 추구했다. 빛과 어둠의 경계에 있는 미묘한 어둠을 담은 ‘먹의 집(1975)’, 돌의 원초적인 성질을 균형 있게 활용한 ‘조각가의 스튜디오(1985)’, 홋카이도의 ‘석채의 교회(1991)’와 고층 건물에 돌과 콘크리트의 대비를 적용한 ‘엠빌딩(1992)’, 시골 민가에서 모티브를 얻어 흙을 통해 지역의 특성을 드러내고자 한 ‘온양미술관’ 등은 자연적인 소재가 지닌 질감의 존재감과 무게를 통해 시간과 공간의 긴장된 관계를 보여준 작품이다. 한국에 이타미 준이라는 이름을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한 ‘각인의 탑’은 폐자재 돌의 거친 질감을 노출시키면서도 강인한 형태를 통해 원초적인 조형의 순수성을 표현한 건축물이다. ‘자연적인 소재의 농도와 재질이 주는 묵직한 존재감’이야말로 현대 건축이 놓치고 있는 본연의 순수한 감동이라고 본 것이다. 최소한의 인공적인 손길로 자연 재료의 본질을 드러내고자 하는 태도는 이타미 준의 건축에서 핵심이 되는 요소다.
이타미 준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포도 호텔(2001)에 이르면, 건축이 자연 풍광에 어떻게 대응할 수 있는지, 제주라는 지역적 특색에 어떻게 반응할 수 있는지, 순수한 조형과 재료의 물성이 만들어내는 건축 공간이 어떤 감동을 주는지가 보다 극명하게 드러난다. 제주의 오름에서 영감을 얻은 지붕은 마치 초가지붕의 곡선처럼 부드럽게 이어져 포도송이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포도 호텔이 주는 감동은 단지 형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비정형으로 배치한 객실을 한 지붕 안에 모으고 조금씩 틀어진 객실의 틈 사이로 주변 풍경을 담아냄으로써 호텔 자체를 내부에 길을 두고 하나로 이어지는 마을처럼 구성했다. 유연하게 엮인 이 배치는 내·외부 공간의 풍요로움을 만들어낸다. 무엇보다 이타미 준이 전하는  감동은 객실 문을 열었을 때 와락 감겨온다. 높은 층고를 지지하는 굵은 나무의 간결한 구조와 질감이 주는 공간의 고요함, 창밖으로 뻗어나간 퇴청을 변형한 데크, 그 너머까지 이어지는 풍경은 한옥의 공간감을 지니되 이를 현대적으로 성찰해낸다.

 

자연과 건축이 곧 예술, 핀크스미술관 포도 호텔이 한옥의 포근한 공간감과 비정형 배치에서 이뤄낸 질서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면, 자연과 순수한 형태, 재료의 물성과 추상성을 통해 공간에 엄숙함과 고요함을 부여한 것은 핀크스미술관 연작이다. 명상과 사색의 공간을 위해 만든 이 미술관은 별도의 전시품을 두지 않고 자연과 건축물이 곧 전시물이 되도록 하기 위해 각각 물, 돌, 바람을 담았다. 수미술관은 원형으로 열린 하늘 아래 사각 평면에 물을 담아 바람에 흐르는 물결처럼 정적인 공간을 만들었다. 석박물관은 점점 풍화되는 붉은 코르텐강으로 만든 단순한 상자로, 작은 돌을 두고 멀리 제주 산방산의 풍경을 끌어들였다. 뿐만 아니라 천장의 실린더를 통해 시시각각 떨어지는 빛의 변화를 경험하게 했다. 풍미술관은 제주의 바람을 담기 위해 활처럼 휘게 한 오두막 형상의 나무 상자다. 입면의 나무판 사이에 틈새를 내 바람이 통과하도록 했는데, 거센 바람이 불어올 때 그곳에 서 있으면 건물 전체가 바람이 연주하는 악기가 된다. 시적인 은유, 자연에 대한 사유, 무엇보다 잃어버린 자연에 대한 체험과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이 추상적인 건축물은 이타미 준이 내밀하게 시도해온 건축의 본령, 즉 자연과 야성, 추상을 모두 보여주는 작업이다. ‘자연과 함께 익어가는 건축’이라는 말처럼 핀크스미술관은 폐허가 되더라도 가치를 지닐 수 있는 건축에 대한 이타미 준의 꿈을 축약해놓은 셈이다.
언제나 묻는 것은 “누구를 위한 건축인가?”라는 물음 건축에 대한 이타미 준의 생각을 잘 나타내는 말은 바로 “누구를 위한 건축인가(For whom architecture is)?”라는 물음이다. 풍토에 적합한 건물을 짓고, 그 장소의 흔적과 인간적인 스케일을 반영하며, 자연 재료의 질감을 드러내는 것이야말로 건축을 통해 전할 수 있는 감동이라고 말한다. 그에게 건축은 ‘인간에 대한 찬가’이자 ‘자연 속에서 인간의 더 나은 삶을 추구하기 위해 바치는 또 다른 자연’인 것이다. 이타미 준은 새로운 조형에 대한 끝없는 탐구를 해온 건축가이기도 하다. 순수한 조형성을 탐구했지만, 이는 형태를 위한 것은 아니다. “조형의 순수성을 획득하기 위해 토지의 전통에 뿌리를 두고 그 문화의 흐름을 추출해야 한다. 강인한 염원을 담은 조형 감각과 자유로운 시대정신을 겸비해야 한다”는 그의 말은 작위적인 방식이 아니라 지형과 자연 안에서 정제된 형태를 이끌어내어야 함을 말한다. 무엇보다 지금의 이타미 준을 있게 한 것은 지역성과 토착성에 대한 치열한 의지일 것이다. 건축은 철마다 바뀌는 자연 풍경이 함께했을 때 비로소 드러난다고 한 이타미 준은 ‘현란한 조감도와 화려한 건축 어휘, 거대하게 솟은 랜드마크가 시선을 끄는 척박한 시대에 전통적 가치, 근대의 가치, 재료와 건축 본질을 이야기해온 건축가’다.

 

머리가 아닌 따뜻한 가슴으로 건축하다  2009년 제주 방주교회를 선보였을 때, 이타미 준은 또 다른 시대에 진입한 듯했다. 재료의 질감, 구조와 공간의 일체화, 절제된 조형성까지, 완성도 있는 건축을 선보였지만 무엇보다 그의 건축적인 아이디어가 꽃을 피운 것은 서로 다른 세 종류의 징크(zinc, 아연 패널)로 생동감 있는 모자이크를 연출한 지붕이다. 역동적으로 흘러가는 대지의 하늘을 바라보다가 하늘과 빛이 달려가는 듯한 이미지를 떠올려 만들었다는 방주교회는 지금껏 볼 수 없었던 자유로움과 생동감으로 반짝인다. 어쩌면 이타미 준은 건축가 김중업의 건축을 통해 던진 “한국에서 모더니즘 건축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승화시켜나간 건축가일 것이다. 한 비평가는 이러한 그의 건축을 ‘모던 코리아’라는 이름으로 칭했다. 한국성을 발견하며 끊임없이 지역적 성찰을 한 그의 건축 스타일을 두고 ‘건축 그 자체가 현대미술이며, 토속적인 소재로 추상미를 지향한다’는 뜻으로 붙인 이름이다.
경계에서 더 치열했을 한국성에 대한 통찰, 조형의 순수함과 인간의 사색을 드높이는 공간에 대한 탐구는 방주교회를 기점으로 모던 코리아를 넘어 이타미 준의 자유로운 건축 세계를 더욱 굳건히 해준 듯했다. 이타미 준과의 예상치 못한 이별이 주는 안타까움은 그래서 더 크게 다가온다. 지난 7월 15일 한국에서 열린 추도식에서 이타미 준의 맏딸이자 건축가인 유이화 소장(아이티엠[ITM] 건축 연구소 한국 지사 대표)은 “아버지이자 스승, 선배이며 머리가 아닌 따뜻한 가슴으로 건축하는 법을 아는 건축가”라는 말로 그를 기리며 이타미 준의 건축을 이어나갈 것을 다짐했다. 재일교포 2세 건축가라는 경계에서 누구보다 한국의 미를 탐구했던 건축가 이타미 준. 치열한 지역성, 재료, 풍토에 대한 고민을 통해 자연과 추상, 건축의 야성이라는 고루하고 진부한 단어를 설득력 있는 조형으로 풀어낸 장인. 그는 이제 경계에서 자유롭게 날아올라 더 심오한 가치를 지닌 건축 철학을 유산으로 남겼다. 이는 우리 문화에서 다시 물어야 할 숙제, 새로운 모던 코리아에 대한 탐색일 것이다.

글_임진영(건축 전문 기자)

+ Style Chosun 2011년 9월 vol.63  http://style.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9/21/2011092100810.html

빛나는 태양의 꿈, 르 꼬르뷔지에 / 모닝캄 1111

르 꼬르뷔지에는 누구나 아는 이름인 동시에 쉽게 설명하기 어려운 건축가다. 스위스에서 태어나 파리의 건축가로 자리잡은 르 꼬르뷔지에는 기계미학으로 대표되지만 합리적이고 기능주의적인 건축가만은 아니었다. 철근콘크리트와 같은 새로운 기술에 주목했고 급속한 산업화로 야기되는 도시와 주거 문제에 대응했으며, 이를 새로운 건축 정신을 통해 돌파함과 동시에 풍부한 조형감을 펼쳐내기도 했다. 근대의 시대적인 요구에 대응해 그 중심에 섰던 거장 르 꼬르뷔지에는 말 그대로 종합예술인으로서 근대인의 삶을 실천한 건축가다. 그 근원에는 몇 가지 중요한 전환점이 놓여있다. 그의 고향 라 쇼 드퐁 마을에서 경험했던 자연에 대한 영감, 도시에 대한 날카로운 성찰과 건축의 기념비적 가치를 발견한 동방여행, 그리고 오귀스트 페레, 아메데 오장팡과 같은 동시대 예술가, 건축가들과의 왕성한 교류를 통해 일궈낸 지적 확장이 있었다.

스위스의 작은 마을, 라 쇼 드 퐁의 샤를르 에두아르 잔느레 _ 르 꼬르뷔지의 본명은 샤를르 에두아르 잔느레다. 전통적인 수공업에 바탕을 둔 시계산업의 마을, 라 쇼 드 퐁에서 시계공의 아들로 태어난 샤를르 에두아르 잔느레는 자연스럽게 공예예술을 접하며 자랐다. 그는 라 쇼 드 퐁 미술학교의 교육을 통해 아르누보의 영향을 간접적으로 받고 있었다. 특히 미술학교의 교사인 샤를르 레플라트니는 학생들을 데리고 언제나 자연 속에서 예술의 원형을 찾고자 했다. . 훗날 르 코르뷔지에는 쥐라 산맥에 둘러 싸인 스위스의 작은 마을에서 자연을 탐구하던 이때의 기억이 평생 동안 자연에 대한 감동을 마음속 깊이 담아 놓았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아르누보의 영향이 커지는 사이, 다른 한쪽에서는 기계문명이 깨어나고 있었다. 수공예에 바탕을 둔 공업 예술 역시 산업화의 물결에 조금씩 휩쓸리기 시작했고, 장식 예술에 대한 비판도 서서히 일어났다. 에두아르 잔느레는 새로운 세계에 발을 내딛기로 했다.

빛나는 태양, 동방 여행 _ 아직 10대인 에두아르가 장식예술과 결별하고 새로운 건축에 대한 모색을 시작하기 전, 그는 많은 여행을 통해 도시와 건축에 대한 자신만의 안목과 생각을 정립해나갔다. 1907년경 방문한 피렌체 여행에서 에마의 샤르트르회 수도원을 방문해 공동생활에 대한 이상적인 모습을 발견했고 공동체의 행복에 대한 그의 관심은 대도시 주거의 한 대안으로 집합주택을 구상하게 이른다. 그 후 빈과 독일 등 다양한 곳에서 건축 실무를 하던 에두아르는 오귀스트 클립스뎅과 함께 콘스탄티노플과 그리스로 향하는 동방여행을 떠나게 된다. 6개월에 걸친 이 여행은 그의 전 생애에 걸쳐 아이디어의 원천이 되었다. 그가 여행을 통해 쓴 <동방여행>은 단순히 감상적인 여행기가 아니다. 그곳에는 20대의 젊은 예술가의 패기 넘치는 서술과 함께 도시와 건축에 대한 본질을 파악하는 날카로운 안목과 동경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헝가리와 세르비아에서 농부들의 도자기가 지닌 야성미와 조형미, 색에 대한 황홀감, 도시와 건축, 거리에서 그가 열광한 것은 문명화되기 이전, 내면에 담긴 야성이었다. 또한 언제나 하얗게 석회칠을 해 눈부시게 빛나는 하얀 집, 지중해의 찬란한 태양에서 그는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모스크와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과 같은 고전건축이었다. 이 여행은 이십 대 초반의 젊은이가 그만의 냉철하고 명민한 시선으로 새로운 도시와 문화를 만나고 이를 면밀하게 바라보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도시와 건축에 대한 수많은 아이디어와 본질에 대한 가치를 가슴으로 담게 한 시간이었다.

시대의 변화,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직시 _ 1900년대 초반은 에꼴 데 보자르의 양식주의와 철근콘크리트의 새로운 시도가 공존하던 시기다. 동방여행을 떠나기 전 에두아르는 당시 철근콘크리트의 가능성에 가장 빨리 눈을 떴던 오귀스트 페레의 사무실에서 일하며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직감했다. 그리고 1914년 전쟁으로 인해 폴란드 지방의 황폐함을 목격한 그는 가장 효과적이고 단순한 시스템을 고안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대량생산에 의한 건축 표준화 시스템, 사용자 스스로 공간을 구성할 수 있는 자유로운 평면, 바로 도미노 시스템에 대한 아이디어다. 기둥과 바닥판, 그리고 계단이라는 단순한 구조를 통해 건설과정의 철저한 단순화와 합리화를 담은 이 아이디어는 이후 그의 건축에서 서서히 실현된다.

1917년 29세에 파리로 향한 에두아르 잔느레는 1920년 에스쁘리 누보라는 잡지를 창간했는데, 이 매체를 통해 르 꼬르뷔지에라는 이름을 처음 사용하며 새로운 건축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강력하게 피력해갔다. 여행으로 얻은 통찰, 다양한 예술가·기술자와 교류를 통해 얻은 사고 그리고 스스로 치열하게 사무실과 도서관, 미술관을 오가며 탐구한 모든 사고가 절정을 이루어 낸 것은 바로 <건축을 위하여>라는 책이다. 르 꼬르뷔지에라는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된 이 책에는 기술의 미학에 대해, 유럽 고전건축의 전통에 대한 감흥과 건축적인 기본 철학, 무엇보다도 하나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강력하게 표방하고 있다.

그런 그가 자동차, 선박과 비행기에 매료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것은 기계화와 도구로서 기능에 정확하게 응답하는 새로운 시대의 상징이었다. 20세기 공업 미학의 명료한 이 형태는 그의 건축에 새로운 영감을 불어 넣었다. 완벽하며 논란의 여지가 없는 작동, 기계의 아름다움과 논리, 완전한 작동 방식에 매료된 그는 쓸모 없는 장식을 없애고 합리적인 기구의 효력을 발현시키는 것에 관심을 두었다. 이는 주거에도 이어져, 본연의 목적인 거주 기능에 충실면서 그 요소를 대량 생산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게 된다. 기계주의, 현대 기술을 바탕으로 한 건축의 혁신 등 그 시대의 구체적인 필요에 현실적으로 답한 것이다.

근대 건축과 도시에 대한 꿈 _ 1920년대부터 40년대까지의 시간은 르 꼬르뷔지에가 근대건축의 기본적인 틀을 완성해가는 과정이다. 거리의 선술집 ‘르잔드로’에서 영감을 얻어 주거공간의 새로운 개념을 담은 시트로앵 주택은 집이 자가용처럼 대량생산되어야 한다는 의도를 담고 있다. <300만 명의 도시계획안>도 이 시기에 나온 것으로 시트로앵 주택과 같은 상자형 주택이 고밀도 주택에 반복적으로 쌓이는 발상이다. 1925년 프랑스장식예술 박람회에서 집에 대한 그의 생각은 더 명확하게 표방되는데, “집은 모든 사람의 집, 누구나 살 수 있는 집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그는 대량생산이 가능한 테이블과 의자도 함께 디자인해 전시했다.

르 꼬르뷔지에는 무엇보다 근대건축에 대응하는 건축 원칙을 확립하고자 했다. 하나의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1926년 그는 신건축의 다섯가지 요소로 동적인 움직임을 만드는 필로티, 옥상 정원, 자유로운 평면, 수평창, 자유로운 파사드를 천명했다. 도미노 시스템에 바탕을 둔 이 요소는 결국 근대를 향한 르 꼬르뷔지에의 건축 선언과 같다. 파리에 지은 3개의 주택 – 라 로쉬, 슈타인, 사보아주택은 이 선언을 미학적으로 실현하며 새로운 주거의 등장을 알렸다. 또한 20세기 정신의 위대한 모험이라고 불리는 ‘빛나는 도시’를 통해 고밀도 도시에 대한 근대건축가의 꿈을 담았다. 도시 계획에 대한 그의 지속적인 연구와 설계는 이후 인도 찬디가르의 도시설계를 통해 실현된다.

풍부한 조형적 상상력을 품은 건축가 _ ‘집은 살기 위한 기계다’라는 유명한 인용구는 르 꼬르뷔지에를 합리적, 기능주의, 기계미학의 분류 안에 가두지만, 실상 그는 새로운 시대를 위한 또 하나의 미적인 이상향을 제시하고 싶어 했다. 롱샹교회가 보여준 풍요로운 조형적 상상력은 그가 단순한 기능주의자가 아님을 보여준다. 자유롭고 유기적인 교회의 평면과 특유의 형태는 ‘자연에 바치는 기념비와 같다’는 평을 받는다. Stainslaus von Moos는 <르 꼬르뷔지에의 생애>라는 책에서 진흙과 같은 가소성을 지닌 롱샹과 입체기하학을 따르는 듯한 라 뚜레뜨수도원을 비교한다. “롱샹이 공간 안에서 꿈틀대는 유기체라면 라 뚜레트는 기계다. 이는 그의 만년의 작품에 두 가지 대처 – 아르누보의 추억과 초기 기계주의의 추억이 존재함을 보여준다.” 르 꼬르뷔지에의 내면에 담겨있는 두 원형, 즉 자연에 대한 경외와 새로운 시대에 맞는 근대적인 시스템의 구현 모두가 그의 건축인 것이다. ‘건축이란 빛 아래 집합된 입체의 교모하며, 정확하고, 장려한 연출이다.’라는 말처럼 그는 이성만을 앞세운 건축이 아니라 미학적인 만족감을 통해 건축적 감동을 추구한 건축가다.

+ MORNING CARM 1111

* 이 글은 게재된 요약본 전의 글입니다.

느리게 쌓인 동네, 서촌 / 아시아나 1111

보안여관 프리마켓 ‘세모아’

시월의 어느 주말, 조용한 동네에 시끌벅적 활기가 돈다. 통의동 보안여관 옆 작은 마당과 통인시장 정자 앞 벼룩시장이 서고, 동네의 예술가와 작가·지역 상인과 주민들이 모였다. 흥정을 벌이고 음식을 나누고 술 한잔을 권하는 사이, 오가는 관광객과 등산객까지 발길을 멈추고 구경에 나섰다. 북적거리는 모양새마저 차분한 서촌의 주말. 서울 한 복판에는 또 다른 시간이 숨어 있다.

오랜 역사의 자취 _ 서울의 중심, 세종로를 따라 곧게 뻗은 고층 빌딩의 위용은 광화문 앞까지 밀려와 멈춘다. 8차로 길을 가로지르는 도심의 속도가 무색하게, 등을 돌리면 낮고 허름해보이는 동네가 펼쳐진다. 경복궁 돌담길을 따라 공간도 느릿하게 퍼져나가는 듯한 이질적인 풍경. 효자로에는 가을 공기만큼이나 농밀한 한적함이 흐른다. 청와대로 향하는 효자로를 돌아 자하문로로 넘어가면 통인시장과 금천교시장의 활기, 상가와 사무실을 오가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좀 더 많아진다. 그래도 낮은 건물 너머로 선 굵은 인왕산이 보이고 오래된 혹은 소박한 표정은 비슷하게 흐른다. 경복궁 옆 청와대 앞까지 이르는 청운효자동 일대와 인왕산 동쪽 아래로 흘러내려와 사직단에 이르는 이곳은 ‘서촌’으로 불린다. 체부동, 통인동, 누하동, 누상동, 통의동, 효자동 등 길 하나 건너 동이름이 바뀔 만큼 많은 15개의 이름이 오랜 시간 동거해온 곳이다. 일상의 시간이 차곡히 쌓인 동네, 서울이 느리게 성장했다면 이런 모습이었을까.

1930년대 경복궁 일대

조선의 역사와 함께 시작된 서촌에는 오랜 역사의 흔적과 예술인들의 이야기가 남아 있다. 인왕산 아래 옥인동은 조선 전기 안평대군이 무계정사를 지어 당대 문인 학자들과 경치를 즐길 만큼 경관이 수려한 곳으로 꼽혔다. 이곳에 거주했던 겸재 정선은 인왕재색도에 인왕산의 풍경을 담았다. 조선 후기에는 하급관리들과 중인들의 거주지가 조성되었고 위항 시인들의 모임터가 옥인동에 있었다고 한다. 사직단 근처 필운대의 바위에는 이항복의 집터임을 알려주는 글씨가 새겨져 있고 청와대 옆에는 후궁들의 사당인 칠궁이 자리하고 있다. 일제 시대, 조선총독부가 들어서면서 경복궁 옆 통의동에는 일본인들의 관사와 사택이 대거 지어졌는데, 지금도 통의동 25번지에는 일본식 가옥이 여러 채 남아있다. 지금은 볼 수 없는 독특한 장식의 일본식 양옥이 보이기도 한다. 통인동을 따라 오르면 이곳에서 창작활동을 했던 시인 이상의 시, ‘오감도’에 나올 법한 막다른 골목길이 이어진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시인 윤동주의 하숙집과 근대화가 이중섭의 흔적이, 동양화가 박노수의 가옥과 작업실이 남아  근대 문학과 예술의 자취를 볼 수 있는 곳이다. 특히 1936년 서정주 시인이 머물며 당대 동인지 <시인부락>을 만들었다는 보안여관은 80년 된 여관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은 채 영추문을 마주 하고 있다.

인왕산 아래 도시형 한옥과 다세대주택이 공존하는 서촌 풍경

역사적인 기록을 알리는 지표와 촌스러운 간판, 낡은 양옥, 드문드문 보이는 도시형 한옥, 그 틈을 파고 들어간 다세대주택가 뒤섞인 풍경은 얼핏 특색 없어 보일지도 모른다. 높지 않은 건물 너머로 보이는 인왕산과 백악산(북악산), 한옥 주거지와 일본식 주택, 복개된 물길과 골목길이 구비구비 이어져있는 서촌의 성격은 한옥밀집지로 떠오른 삼청동이나 가회동과 다르다. 조선 정궁인 경복궁의 문화재 주변 고도제한과 청와대의 경호 문제로 오랜 시간 개발이 억제된 곳. 조선시대, 일제시대, 해방 후까지, 통치기관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으면서도 그로 인해 개발에서 소외된 지역은 결과적으로 느리게 축적된 기억과 고유의 풍경을 갖게 되었다.

예술, 사람이 머무는 곳 _ 서촌의 주민들은 대부분 한 곳에서 몇 십 년 이상을 살아온 토박이들이다. 60년 된 헌책방, 대오서점은 방송의 다큐멘터리에 소개되면서 동네의 명소가 되었다. 함석판에 페인트칠을 한 옛날식 간판이 멋스러운 한옥 상점에 자리하고 있다. 7~80년 동안 같은 자리를 지킨 청운동 영진상회처럼 통인시장에도 동네와 함께 세월을 보낸 가게들이 즐비하다. 잘 가꾼 화분이 놓인 골목 안에 들어서면 언제나 골목에 모여 앉아 담소를 나누는 주민들을 만나 동네 이야기를 듣게 된다. 서촌의 조용한 풍경은 백발의 친구를 배웅하는 할머니의 느린 걸음과 닮았다.

새로 들어선 가구점 겸 까페와 동네 목재상

온 도시가 개발로 들썩일 때 소외되었던 조용한 동네에 외지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한 건 5~6년 전부터다. 급격하게 상업화된 삼청동에 밀려나거나 조용한 동네에 둥지를 틀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서촌의 도시형 한옥을 개조해 갤러리와 공방을 차렸다. 누하동 주변의 낡은 건물을 적절하게 손 본 까페와 공방의 작가들은 <효자동 프로젝트>를 만들었는데, 매월 둘째 주마다 벼룩시장을 열어 동네 주민들과 어루어지고 있다. 까페 디미와 두오모와 같은 작은 레스토랑들이 들어왔고, 적선동술집이나 퍼블릭과 같은 멋스러운 술집이 동네 상가에 합류했다. “사실 이곳은 사람들이 많이 오던 곳이 아니였어요. 낯선 사람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기보다는 오랜 기간 알고 지내며 동네 사람들에게 밥을 차려주고 싶어서 이곳에 자리잡았는데, 주변의 대부분 사장님들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에 놀랐죠.” 이탈리안 레스토랑 두오모의 허인 씨는 조용하고 한적한 서촌에 하나 둘 불을 밝힌 작은 가게들 역시 같은 생각일 거라고 말한다. 최근에는 한정식집으로 유명한 통의동 골목에 가스트로통과 유로고메와 같은 고급 레스토랑이 들어서면서 새로운 바람도 불고 있다.

이상의 집, <이상과의 대화> 오프닝 풍경

곳곳에 자리잡은 문화공간도 서촌의 매력을 더하고 있다. 기존의 대림미술관이나 진화랑 뿐만 아니라, 갤러리 아트사이드가 최근 둥지를 틀었다. 시인 이상의 집터를 기념공간을 조성하려는 <이상의 집> 프로젝트를 아름지기가 진행하고 있고, 오래된 보안여관은 젊은 작가들을 소개하는 문화공간으로 쓰이고 있다. 오랜 기간 대안공간으로 이름을 알리고 있는 브레인 팩토리처럼 골목 곳곳에 소규모 갤러리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사진작가 이종명 씨가 운영하는 mk3 까페가 있는 골목은 경복궁 돌담길을 바라보는 한적한 골목이지만 벌써 여러 개의 까페가 생겨났다. 그 사이 Mk2는 비영리공간인 갤러리 팩토리, 디자인회사인 워크룸과 의기투합해 가가린이라는 특색 있는 위탁 서점을 함께 내기도 했다. “1층을 얻어 길에서 바로 접할 수 있는 사무실을 내고 싶었는데, 서촌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거예요..” 워크룸의 김형진 씨 말대로 보증금도 없는 낮은 월세와 느리게 흐르는 동네 풍경을 따라 소박한 가게들이 들어오고 예술가들의 작업실과 갤러리들이 모여들면서 서촌은 지금까지의 느린 풍경을 이어올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서촌의 골목길

느리게 축적된 풍경 _ 서울 도심 한 가운데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오래된 표정이 공존하는 곳, 개발의 부산스러움과 새 것이 주는 생경함과는 거리가 있는 조용하고 한적한 거리, 낡고 오래된 건물들 사이로 하늘과 산이 보이는 풍경, 목재상과 철물점이 말끔한 까페와 어깨를 나란히 해도 어색하지 않은 곳, 대규모 개발에서 벗어나 오랜 도시 조직의 흔적이 남아있는 서촌. 개발에 대한 소외는 오랜 시간 주민들에게 불편을 주었지만 그렇게 묶여진 시간은 이제 더 이상 서울에서 찾기 힘든 풍경으로 남았다. 조선시대의 기록, 일제시대의 흔적, 근대의 풍경 그리고 6~70년대의 간판과 2000년대 지어진 건물까지, 각기 다른 시대가 공존하며 느리게 성장해온 서촌의 풍경은 급속하게 성장해온 600년 서울의 단편을 펼쳐 놓은 스펙트럼 같기만 하다. 느리게 쌓인 풍경,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기록으로 펼쳐진 오래된 시간의 흔적이다.

영추문을 마주한 통의동 거리
1. 보안여관은 80년된 여관은 1930년대 시인 서정주가 머물며 창작활동을 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는 곳이다. 적산 가옥 특유의 목구조에 각각의 방이 복도를 따라 놓인 여관으로 공간의 특색이 강렬하다. 이곳을 운영하고 있는 (주)메타로그는 전시와 공연을 통해 오래된 여관의 문화공간으로써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2. 서촌의 명소가 된 이탈리안 가정식 레스토랑 두오모. 동네 풍경에 거스르지 않게 소박하게 개조한 인테리어로 화려한 것보다 친숙한 인상을 준다. 이탈리아 시골 농가의 가정식을 바탕으로 한 음식을 차려내며 동네 단골들이 자주 찾는 친숙하고 다정한 공간이다. 조용한 동네의 어두운 골목 사이로 새어 나오는 레스토랑의 불빛과 같은 골목에 영화인들이 주로 찾는 퍼블릭 바가 마주해 운치를 더한다.
3. 이상의 집과 박노수 가옥까지 통인동 길을 따라 누하동까지 올라가는 길에는 근대 문학과 예술의 흔적이 남은 길이다. 이상이 살던 통인동 집은 여러 채의 필지로 나뉘었는데, 그 중 남은 한 채의 한옥을 이상 기념 공간으로 조성하는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동양화가 박노수 가옥은 본래 일제시대 세력가 윤덕영이 지은 것으로 한국 최초의 건축가 박길룡의 설계로 양옥과 한옥이 섞인 절충식 가옥이다. 이 길을 따라 노천명, 화가 이상범, 이중섭 가옥의 흔적이 남아 있다.

+ ASIANA 1111

젊은 건축가의 집 이야기 / 건축가 장영철, 전숙희(와이즈건축)

와이하우스_전숙희 장영철

부부건축가 장영철, 전숙희 소장은 자신들의 이니셜 YS의 발음을 따서 와이즈건축이라는 사무실 이름을 지었다. 야심만만한 태도를 버리고 현명하고 정직한 건축을 하자는 의미다. 첫 프로젝트인 Y하우스는 다세대주택의 새로운 유형을 시도해 주목을 받았다. 남향으로는 기존 방식대로 4개의 주거 유닛을 두고, 비교적 인기가 적은 북쪽 방향에는 중이층 로프트 형식의 스튜디오형 주거 공간을 만들었다. 남는 공간을 활용하니 건물의 비스듬한 사선은 조형적인 요소가 되었다. 폴리카보네이트와 같은 불투명 재료와 아연도 컬러 강판은 벽돌과 화강석이라는 주변의 전형적인 재료와 차별화된 인상을 만들었다. 건축가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건축시장의 사각지대에서 한 실험이지만 다세대주택이 그들 건축의 전부는 아니다. 와이즈건축이 추구하는 ‘Smallness’는 사람들이 접하기 쉽고 단순하며 쓰임새가 좋은 일상의 소소한 물건들처럼, 일상 가까이에서 건축을 일궈내고자 하는 다짐이다. 무엇보다 아이디어가 넘치는 그들의 작업은 척박한 토양에서 건축을 즐길 줄 아는 태도로 건축이 가진 무한한 가능성을 기대하게 한다.

Y하우스_전숙희 장영철

어떤 건축을 추구하는가 _ 장롱에 모셔두고 일년에 한번 입을까 말까 하는 옷을 만들 것인가, 평상시에 그 사람을 잘 드러낼 수 있는 옷을 만들 것인가라고 한다면 우리는 후자가 아닐까. 자신만의 취향이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분들은 지금껏 아파트에 떠밀려 집을 사는 것으로 이해했지 지을 수 있는 것으로 이해할 기회가 없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사는 사람을 드러낼 수 있는 집을 디자인하고 싶다.

Y하우스_전숙희 장영철

최근 단독주택에 대한 열망이 폭발적이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건축가를 멀게 느낀다 _ 땅콩집이 고무적인 건, 사람들에게 ‘집은 사는 것이 아니라 지을 수 있는 것’임을 알려줬다는 것이다. 땅콩주택이 도심을 벗어나 전원 속에서 저렴하게 지을 수 있는 방식을 제시했다면, 최근 젊은 건축가들의 도심 내 작업이 부각되는 것은 기쁜 일이다. 소통의 거리가 더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다양한 주거 유형을 받아들일 상황이 된 것 같다. 다세대주택은 그 동안 새로운 유형이 개발된 것이 없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게 무척 많다. 가장 큰 문제는 면적에 민감하다는 것인데, 요즘 다양함에 대한 요구가 강해지고 있기 때문에 충분히 변화 가능하다고 본다.

그러나 여전히 건축가의 역할에 대해 잘 모른다. 설계를 하고 건축주를 대행해서 감리를 보고 시공사와 이야기를 하고 감독하는 역할들을 하게 되는데, 빠른 시간에 저비용으로 짓는다고 장담하는 집장사에 더 익숙하다. 그래서 당장 설계비라는 조그만 문턱도 넘기 힘들어하신다. 건축가는 건축주의 몸에 맞게 디자인하고, 그 예산에 맞게 건물을 짓기 위해 건축주와 함께 노력한다. 그래서 좋은 건축가를 통해 집을 짓는 행위는 ‘집짓기’라는 어려운 여행을 시작할 때 동반자를 만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좋겠다.

Y하우스 / 장영철, 전숙희

젊은 건축가로써 집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다 _ 집은 삶을 사는 곳이다. 또한 그 사람을 확장할 수 있는 곳이다. 지위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람들을 초대해 만날 수 있는 공적인 공간이다. 또 하나, 집을 단지 바닥면적으로 보지 말라고 부탁하고 싶다. 우리가 체험하는 것은 3차원의 공간이다. 건축가는 눈높이에서 천정까지 내부의 모든 공간을 3차원으로 분석하고 만들어낸다. 공간적인 사고를 했을 때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주거공간을 만들 수 있다.

Y하우스 / 장영철, 전숙희

어떤 집을 짓고 싶은가 _ 무엇보다 자신만의 이야기를 가진 건축주를 만날 때 행복하다. 4대가 함께 사는 주택을 짓고 싶다는 한 가족처럼, 매력적인 건축주를 만나면 조건이 각박해도 건축작업 자체가 흥미롭고 건축가로써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어 기대된다. 결과적으로 건축주들과도 관계가 매우 좋아진다. 흥미로운 사람들, 이야기가 있는 사람들을 만나길 기대하고 있다. 건축주의 이야기가 흥미로우면 그 집에 좋은 생각을 넣어줄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이 우리가 건축하는 방향과 잘 맞다.

전숙희 장영철 _와이즈건축

+LUEL 1109

젊은 건축가의 집 이야기_건축가 조재원

제주 돌집 / 사진_진효숙

제주 돌집은 건축가 조재원이 완공한 첫 주택이다. 변화무쌍한 제주의 자연 속에 집을 설계하면서 고민한 것은 뒤편으로 펼쳐진 제주의 풍경과 만나는 새로운 경로를 만드는 것이었다. 입구에서 바라보면 하나의 차분한 돌담이 액자처럼 놓이지만 집 안으로 들어가면 주변 풍경을 담은 다양한 공간이 펼쳐진다. 침실과 트인 거실로 구성된 단순한 집에서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30cm 높이의 툇마루다. 건물에 자연스럽게 끼어들어간 툇마루는 외부 테라

제주 돌집 / 사진_진효숙

스로 이어져 방 안에서는 공간의 성격을 구별하는 요소로, 테라스에서는 한옥 툇마루에서 느끼는 편안함을 제공하는 장소가 된다. 단순한 공간에서 달아맨 작은 마당처럼 이 작은 요소는 공간의 변화를 만들어낸다. 건축주와의 소통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축가 조재원 씨는 집에 대한 꿈을 건축화하는 건축가로써 역할을 강조하고 공간을 매개로 소통하고자 한다.

제주 돌집에서 중점을 둔 것은 무엇인가 _ 이곳은 살림집이 아니라 별장이라서 최소화된 공간이 필요한데다 건축주는 제주의 토속적인 재료를 쓰는 것과 벽난로라는 두 가지 조건만 주었다. 건축주를 대행해 땅부터 직접 골라 모든 과정을 진행한 경우라 건축가로서의 욕심을 조율하는 과정이었다. 우선 펼쳐진 주변의 풍경을 내부의 공간에 어떻게 엮어낼 것인가가 중요했다. 차분한 돌담이 하나의 액자처럼 집 뒤의 풍경을 담게 해 집의 첫 인상을 만들었다. 그리고 내부 공간의 형태는 집 뒤로 펼쳐진 풍경을 다양하게 엮어낸 결과다. 풍경을 탐험하듯, 건축주가 이곳에서 어떤 경험을 하게 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집에서는 몸에 닿고 접촉하는 면이 많기 때문에 현무암 판석, 삼나무 등 다양한 촉감을 가진 감성적인 재료를 쓰고 싶었다. 무엇보다 툇마루가 가장 고민한 공간이다. 좌식과 입식의 중간 형태에 관심이 많았는데 거실 끝 쪽의 드라마틱한 공간에 두고 외부로 연장했다.

집을 설계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_ 집은 가장 사적이고 내밀한 공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디테일한 요구 사항이 많을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집에 대한 일반해와 특수해를 잘 조율하는 것이 중요하다. 집은 사는 공간이기 때문에 굉장히 구체적인 동시에 환상도 있다. 예를 들어 건축주가 별을 보고 싶어서 천창을 내고 싶다고 하면, 결로가 생길 수 있고 유지에 대한 어려움이 있지만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한 사람의 엉뚱한 꿈이 실현될 수 있는 특수한 공간이다. 한편으로 모든 특수함을 다 반영하기는 곤란하다. 난방, 안전, 시선 등 한계에 대해 알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건축주의 로망과 건축가의 현실적 판단에 대해 충분히 소통해야 한다.

제주 돌집 / 사진_진효숙

사람들이 갖는 집에 대한 열망에 대해 건축가는 무엇을 더해줄 수 있을까 _ 집은 모든 것을 끝까지 다 상상해야 한다. 어느 하나도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 보편적인 것을 담으면서도 그곳에서 살아갈 분들의 특별함을 반영해야 하는데 가장 힘들면서도 도전적인 부분이다. 건축가가 개입해서 좋은 것은 큰 틀에서 합리적이고 요구에 맞게 바로잡아줄 수 있다. 건축주와 소통을 충분히 하면 살면서 경험할 수 있는 사소한 부분에서도 만족감을 줄 수 있다.

주거 문화에 대해 제안하고 싶다면 _ 집은 결과물로써의 생산품이 아니다. 생명을 가지고 있어서 관리하고 다듬어 가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 사람들은 관리가 필요 없는 집을 꿈꾼다. 그 결과 내 집을 관리하는 문화가 없어졌다. 또 집은 자신의 특별한 삶에 대한 꿈이다. 집에 대해 꿈꾸라고 하고 싶다. 그 해결은 전문성을 가진 건축가가 한다. 스스로 해결하지 않아도 된다. 어떤 집에서 살고 싶다고 꿈꾸고, 어떻게 만들 것인지 계획도 세우고 차근차근 노력하고 소통하고 관리하는 모든 과정이 집이다. 그리고 그 꿈이 다양해졌으면 좋겠다. 미래의 집은 개개인이 각기 다른 집에서 사는 것이 중요하다. 누구나 자신의 집을 꿈꾸어야 한다.

제주 돌집 / 사진_진효숙

+LUEL 1109

젊은 건축가의 집 이야기_건축가 고기웅

해우재 / 사진_김용관

건축가 고기웅의 첫 프로젝트는 전 화장실협회회장의 집인 해우재였다. 해우재는 변기 모양의 집을 지어달라는 건축주의 독특한 요구를 자신의 건축 어휘로 해석해 집이다. 그의 건축은 자유곡면이 만들어내는 유려한 형태로 주목 받지만 형태는 내부 공간을 조직한 결과이지 목적이 아니다. 각각의 실을 정하고 공간의 높낮이와 빛을 고려하고 나면 기본적인 내부 평면 공간이 정해지고, 실내에서 다양한 높낮이의 공간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구성하다보면 건물의 형태는 자연스럽게 결정된다. 그래서 그는 형태를 만드는 건축가가 아니라 공간을 자유롭게 조직하는 건축가다. 거부감 없이 곡면을 다룰 줄 아는 고기웅 소장은 집에 작동하는 여러 이유들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엮어가곤 한다. 그에게 집은 그곳에 살 사람들이 어떤 방식과 태도로 살아갈 것인가를 정의하는 과정이다.

해우재 / 사진_김용관

판교주택의 특징은 무엇인가 _ 개인적으로 내부공간에 관심이 많다. 공간이 수직적으로나 수평적으로 다양한 높낮이로 잘 연결되고, 실을 구획하는 것을 최소화하려고 한다. 그렇게 공간을 구성하고 나면 형태는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하얀색 인조대리석을 사용하면서 건물의 인상이 정해졌고 재질이 열성형에 자유로워서 자연스럽게 곡면이 잘 표현되었다. 창문이 돌출되면서 기능적으로 공간이 넓어지는 효과도 있다. 특히 아이들의 시선에서 보면 방의 높낮이가 다르고 거실과 주방, 서재가 다 시선이 연결되어서 다양한 공간을 경험할 수 있다.

판교주택 / 사진_김용관

어떤 집을 제안하고 싶은가 _ 이상과 실현하는 현실에는 약간의 괴리감이 있어서 아직은 말씀드리기가 조심스럽다. 나는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바꾸고 싶은 사람은 아닌 것 같다.(웃음) 다만 사회구성원도, 그 생활양식도 다양해지고 있으니 대량맞춤형 공동주거에 대해 제안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다. 또 앞서 말했듯이 실내 공간의 연결이나 내외부 공간의 연결, 집에서 방으로 구획되기 보다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것이 내부를 풍부하게 만드는 것 같다. 집은 결국 건축주가 가진 삶의 태도와 방식을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함께 새로운 삶의 방식을 만드는 과정이다.

주거 문화에 대해 제안을 하고 싶다면 _ 한국의 주거 상품은 다양하지 않다. 땅콩주택으로 많은 사람들이 주택에 대해 관심을 가졌지만, 그것은 수많은 해결책 중에 하나다. 다시 하나의 유형만 지어진다면 또 하나의 재앙이 되지 않을까. 주거문화의 다양성뿐만 아니라 도시가 건강해지기 위해서도 단독주택과 2, 3층 규모의 주택이 다양한 규모로 개발되어야 한다. 그래야 자신의 삶에 맞는 생활방식을 선택할 수 있고, 도시도 좀더 여러 삶의 모습이 섞여서 좋을 것 같다. 주택 자체는 가장 사적이고 내밀한 공간, 가족의 관계에 관한 공간이기 때문에 오히려 개발의 양식, 방식에 대해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판교주택 / 사진_김용관

건축가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_ 건축가들은 공간에 대해 다양한 해법을 가지고 있다. 또 일반적이지 않은 건축적인 해결책이 경제적인 문제에도 부합할 수 있다. 기능과 경제적인 목적에만 맞게 디자인되기보다 공공이나 사용자의 상황에도 좀 더 나은 공간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LUEL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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