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은 것은 더 좋은 것이다
“Less is More” 이제는 강력한 메시지가 된 이 문구는 루드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의 건축 철학을 대변하는 말이다. 로버트 브라우닝의 시, ‘안드레아 델 사르토’의 한 구절이기도 한 이 간결한 문구는 “적은 것이 더 풍요로운 것이다”, “장식이 적을수록 의미는 풍부해진다”, “형식을 절제할수록 본질에 가까워진다”, “과거의 양식과 결별할수록 새로운 시대를 더 잘 맞이할 수 있다”라는 다양한 의미도 담고 있다. 말하자면 절제의 미학, 공간이라는 본질에 대한 탐구다.
이 말은 미스 반 데어 로에의 개인적인 모토일 뿐 아니라, 20세기 초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가치를 찾고자 했던 근대 건축가들의 이상과 미학을 드러내는 말이기도 했다. 근대화와 산업화가 진행되던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는 역사적인 건물의 외관과 장식을 흉내내는 관습적인 건축에 대한 반발로 다양한 건축적 운동이 일어난 시기다. 시대는 변했는데 그에 걸맞는 건축 정신은 실현되지 않았으니, 건축과 예술은 퇴행하는 듯했다. 예술가들과 건축가들은 새로운 시대를 읽어내려 애썼고, 그 결과 나타나는 도시와 사회의 변화에도 주목했다. 그리고 이 흐름은 1920년대에 이르러 국제주의 형식이라는 사조로 통합되며 바야흐로 현대 건축의 한 장을 열었다. 유리와 철이라는 재료의 발견과 기술의 혁신, 새로운 가치는 아방가르드 예술가와 건축가들로 하여금 새로운 비전을 그려내게 했다.
건축은 시대 정신의 표현이다
미스 반 데어 로에는 바로 이 국제주의 형식의 중심에 있는 건축가다. 흥미롭게도 그는 한번도 건축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고향인 독일 아헨에서 벽돌공이자 석공이었던 아버지에게서 일을 배웠으며 곧 베를린 피터 페렌스의 사무실에서 건축을 시작했다. 이곳에서 철골과 유리에 매료된 그는 산업주의과 신고전주의라는 양식을 통합하게 된다. 산업의 재료와 구조와 고전주의의 비례와 형태에 동시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 결과 처음 미스를 알린 작품은 완공작이 아니었지만, 무엇보다 강력한 이미지를 내포했다. 1922년 그가 프리드리히가 오피스 빌딩 공모전에 제안한 계획안은 20층 규모의 빛나는 글라스타워였다. 유리로 마감된 철골구조의 마천루는 이전에는 세상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형태를 드러내었다. 마치 유리와 철이라는 새로운 산업 재료를 통해 기술적 완성도와 기계 미학의 가치를 높이 세우는 하나의 선언과도 같았다. “건축은 시대정신의 표현이어야 한다”라는 미스 반 데어 로에의 철학이 새로운 건축 형태로 제안되었다. 지금의 보편적 형태의 초고층 빌딩의 원형이지만,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특히 1927년에 독일 슈투트가르트 바이센호프 주거단지 설계 역시 현대적인 주거의 장을 연 중요한 프로젝트다. 미스를 비롯해, 발터 그로피우스, 르 꼬르뷔지에 등 당대의 젊고 뛰어난 건축가들은 한자리에 모인 바이센호프 주거단지는 과거와 결별한 투명하고 현대적인 조형을 가진, 군더더기 없이 절제된 새로운 주거 형태를 제시했다. 당시의 화려한 대리석으로 장식된 육중한 주택에 비해 바이센호프 주거단지의 평지붕을 가진 단촐한 박스 건물은 초라해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단순한 형태 안에는 동선을 줄이고 방을 기능적으로 배치하는 등 현대적인 삶의 방식을 담아내고 있었으며, 표준화를 통해 주거의 대량생산 방식을 이룩했다. “우리가 여기에 설계한 것은 집이 아닙니다. 바로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삶을 설계하였습니다.” 이 주택을 위한 전시회에서 미스는 이렇게 과거와 결별을 선언했다.
형태는 목적이 아니라 결과이다.
미스는 “형태 그 자체를 위한 형태는 없다”고 전제하고, 형태를 목표로 삼는 형식주의를 거부하는 건축가이기도 했다. 스타일을 얻으려고 애쓰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스의 건축에는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비례와 형태적 완결성이 배어 있다. 그것은 앞서 말한 미스의 건축 철학, “Less is more”라는 원칙이 건축 형태에 잘 표현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를 두고 카터는 “시인의 창조적이고 해석적인 이해력으로 작품을 만든 합리주의자”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그의 절제된 미학적 아름다움이 드러나는 대표작은 바로 바르셀로나 파빌리온과 투겐트하트 주택, 그리고 수직타워의 안정적인 비례와 질서를 보여준 시그램 빌딩과 860 레이크 쇼어 아파트다. 무엇보다 현대건축의 걸작으로 꼽히는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은 미스의 건축철학의 정수를 보여준다. 파빌리온은 커다란 석재 기단 위에 2개의 에워싸는 벽체로 내부 공간을 형성한다. 벽이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은 8개의 십자형 철재 기둥이 지붕 슬래브를 지지함으로써 구조와 분리되었기 때문이다. 평면 구성은 자유로워졌으며 벽체를 따라 공간은 자연스럽게 흐르게 되었다. 명쾌한 구조를 통해 건축의 요소를 최소화함으로써 공간이 자유로워진 것이다. 투명, 불투명 유리벽을 통해 시각적 소통으로 공간을 흐르게 한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동시에 이 ‘적은 요소들’은 과연 건축인지, 조각인지 구분할 수 없을 만큼 자체의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지닌다. 뿐만 아니라, 결과적으로 건축은 배경이 되어 주변의 풍경을 끌어들이며 그 결과 더 풍부한 공간을 만들어낸다. 여기에 이 공간에 적합한 가구를 놓기 위해 미스가 직접 디자인한 바르셀로나 의자는 최소한의 가구로 공간과 사물의 관계까지 절제하고자 했던 미스의 의지를 엿보게 한다. 기둥과 바닥이라는 순수한 구조만 남았고, 장식된 벽이 사라지며 투명한 유리는 내외부가 소통하도록 해 공간은 확장되었다. 건축을 절제함으로써 배경이 되고 그 안의 공간과 사물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절제의 미학이다.
Less is more, 미니멀리즘으로 재해석되다.
시대정신을 담은 미스의 절제된 미학은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이 오면서 현대 도시의 삭막하고 천편일률적인 풍경을 만든 주범으로 몰리기도 했다. 혹은 단조롭고 지루함으로 부정당하기도 했다. 로버트 벤추리는 “적은 것은 지루한 것이다(less is a bore)”라고 풍자했으며, 비토리오 그레고티는 “적은 것은 적은 것이다(less is less)”라는 글에서 모더니즘 이후 형식적인 단순주의를 경계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철학은 1960년대 미술과 패션, 디자인 분야를 통해 새롭게 재해석되며 하나의 고전으로 승화하게 된다. 최소한으로 절제된 요소를 통해 본질에 다가가려는 그의 태도는 미니멀리즘의 토대가 된 것이다. 디자인평론가인 스티븐 헬러는 미스의 “Less is More”를 인용한 책을 통해 절제의 미학이 귀환했음을 알렸다. 미스의 건축이 스스로 절제함으로써 배경이 되어 주변 자연과 사물과의 관계에서 공간의 연속성과 투명성, 풍요로움을 이끌어내었다면, 미니멀리즘은 기교나 각색을 최소화하고 단순함과 간결한 표현을 통해 사물의 본질을 드러내고자 하는 태도로 이어진다. 포스트모더니즘과 해체주의를 통해 부정했던 모더니즘이 최근 재평가되는 추세와 일본건축을 중심으로 경계에 대한 탐구와 절제된 건축 공간에 대한 탐구가 이루어지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미스의 건축은 절제를 통해 공간이라는 건축의 본질, 시대 정신, 그 시대의 산업 재료로 구축한 진정성으로 건축을 드러내려 했으며, 시대를 관통하는 절제의 미학을 지님으로써 현대적인 감성을 유지한다. 근대를 가로지르던 정신은 다시 시대를 뛰어넘어 새로운 가치를 이끌어낸다.
글_임진영 건축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