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스 키드(mass studies kid)의 등장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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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강(왼쪽), 권경민(가운데), 최장원(오른쪽)

국립현대민술관과 현대카드가 의욕적으로 추진한 젊은건축가프로그램(YAP)에 당선된 문지방 팀이 흥미로운 것은 그들이 ‘매스 키드(mass studies kid)의 등장’을 알리는 또 다른 지표이기 때문이다.문지방팀의 세 멤버-박천강, 최장원, 권경민이 당선되었을 때, 건축계에서 그 이름을 바로 알아보는 사람이 드물었는데, 이유는 선후배 라인으로 연결된 네트워크에 들어있지 않아서다. 그들의 공통점은 하나, 매스스터디스에서 실무를 쌓은 젊은건축가라는 것이다.

파티 패드 (Party Pad), 조 슬레이드 아키텍처, 2003

파티 패드 (Party Pad), 조 슬레이드 아키텍처, 2003

이들이 가진 장점은 조민석 씨의 파빌리온 프로젝트와 다양한 프로젝트를 통해 현장에서 실무를 쌓고그 태도와 접근하는 방식을 몸으로 습득했다는 것에 있다. 여기서 잠깐 2003년 뉴욕 PS1 프로젝트로 시작해 조민석 씨의 파빌리온 프로젝트를 들여다보자. 조 슬레이드 아키텍처 이름으로 최종 5명에 들어간 ‘파티 패드 (Party Pad)’는 ‘손쉽게 운반되고 즉흥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가벼운 구조물’을 추구, 에어벌룬으로 만든 원형지붕과 풀 패드를 제안한다.

높은 호평을 받았음에도 제작방식의 리스크와 보다 건축적인 안을 당선시켰던 당시 분위기에서 아쉽게 당선되지는 않았지만, 치밀한 리서치와 분석 끝에 유쾌하고 쉬운 해법을 내놓는 조민석 씨의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링돔 프로젝트, 매스스터디스, 2007

링돔 프로젝트, 매스스터디스, 2007

조민석 씨가 파빌리온으로 주목을 받은 것은 바로 링돔 프로젝트다. 링돔은 2007년 뉴욕 스토어프론트갤러리 2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26일간 진행된 ‘퍼포먼즈 A-Z’를 위한 임시구조물이다. 천 여개의 훌라우프를 흔히 쓰는 집 타이로 묶어 지름 8.65M의 거대한 돔형 구조체를 만들었다. 훌라우프를 여러 겹으로 엮어내면서 자체적인 구조 안정성을 갖게 한 것인데, 그러니까 문방구에서 파는 훌라우프와 집타이로, 기술자가 아닌 일반인들 누구나 지을 수 있는 구조물이다. 훌라우프 일부에는 발광체를 넣어서 밤에는 은은한 빛을 내게 하고, 낮에는 흰색 PVC 원형들이 교차하면서 단순하면서도 효과적인 기하학 패턴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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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돔 프로젝트에서 조민석 씨가 중점을 둔 것은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물을 가지고 임시 구조물을 구축할 뿐만 아니라 만드는 과정 자체에 주목하며, 심지어 해체될 때도 다시 훌라우프를 나눠주어 폐기물 없는 파빌리온 프로젝트를 만들고자 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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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로 주목할 조민석 씨의 파빌리온 프로젝트는 바로 ‘에어포레스트’다. 2008년 미국 덴버에서 열린 민주당전당대회를 위한 문화행사 ‘다이알로그:시티’를 위해 설치된 가설 파빌리온이다. ‘시티 파크’의 넓은 공원 잔디밭에 30일 동안 다양한 문화행사를 진행하기 위한 이 임시구조물에서 조민석 씨는 헥사곤 모양의 유닛 9개와 35개의 기둥으로 이어진 에어벌룬 구조물을 제안한다. 구조물은 재단된 하나의 천으로 이어져있다. 기둥 아래에서 공기를 불어넣으며, 약간의 흙과 조명장치만으로 고정되는 이 파빌리온은 지극히 가볍고 유연하게 열린 공간을 구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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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s studies

실현되지 않았지만 구겐하임 미술관에 제안한 ‘ART TRAP’도 조민석 씨의 위트를 엿볼 수 있는 또 다른 설치물이다. 구겐하임 스파이럴 계단에 사람들이 매달릴 수 있는 구조물을 제안한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파빌리온 프로젝트들이 뉴욕에서 활동하다 한국으로 돌아온 조민석 씨가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유지하고 확장하는 초석이 되었다는 것이다. 명쾌한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파빌리온 프로젝트의 장점 중 하나다. 그러나 조민석 씨의 이 말랑말랑하고 명쾌한 해법이 힘을 갖는 것은 초기의 방대한 리서치와 분석의 힘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즉, 현상과 배경의 분석은 치밀하게, 해법은 쉽고 경쾌하게 풀어내는 것이다.

조민석 씨의 이 태도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스 키드를 주목할 이유가 생긴다. 문지방 팀의 권경민 씨는 에어포레스트의 현장실무자였고, 이후 광주의 빈집을 거치며 공공프로젝트에서 실무를 쌓았다. 최장원 씨 오르도스 프로젝트 등 다년간의 실무를 쌓고 독립한다. 여기서 박천강 씨의 이력이 흥미로운데, 매스에서 경험은 비교적 짧지만, 예일대를 졸업한 후 SANAA에서 실무를 쌓고 이어 SANAA에서 돌립한 플로리안을 따라 SO-IL에서 실무를 쌓았으며, 국제갤러리3관의 책임건축가로 경력을 쌓았다. 이 탄탄한 실무 경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말할 필요가 없다. 건축가 민성진 씨가 지적했듯이, 스타아키텍트의 사무실을 돌며 6개월, 1년 미만의 인턴쉽을 경력에 한줄 넣고 이력서를 채우는 것이 얼마나 의미없는 일인지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그런 인턴쉽은 경력에 도움도 되지 않을 뿐더러 실제로 무엇을 체득했느냐에 대한 문제에선 언제나 물음표를 남기기 때문이다. 그러니 간판 수집으로 이력을 채우려는 잔머리는 부디 넣어두시길. 차라리 프로젝트 하나를 현장에서 직접 부딪히고 체득하는 것이 낫다.

이야기가 잠시 샜지만, 결국 매스스터디스에서 만난 이 세 사람은 젊은건축가프로그램의 파빌리온 프로젝트를 통해 뭉쳤고, SO-IL과 매스스터디스에서 경험한 파빌리온 프로젝트를 통해 남다른 감과 자신감을 드러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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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방 팀은 이 YAP 프로그램에서 하나의 이미지를 떠올리고 이를 구체화하는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는데, 여기서 ‘한국적 판타지’라는 말과 ‘이미지’, 그리고 ‘경험’ 세 가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먼저 ‘한국적 판타지’는 한국성을 다루는 또 다른 방식을 보여준다. 2005년 조민석 씨의 공간 특집을 진행할 때, 조민석 씨의 등장을 임권택 감독 세대와 비교되는 박찬욱 감독의 등장에 비유한 기사를 쓴 적이 있다. 취화선의 2002년 칸영화제 대상 수상이 ‘우리 것이 세계적인 것’임을 확인받고 싶어 하는 우리의 보이지 않는 갈망을 충족시킨 것이라면,  2004년 박찬욱 감독의 칸영화제 대상과 김기덕 감독의 베를린, 베니스영화제 감독상 수상은 단지 독특한 자신의 세계를 완성도 있게 표현한 ‘한국 출신’ 감독의 쾌거다. 조민석 씨는 이전 세대가 짊어진 ‘한국성’이라는 굴레와 거리두기에 성공했으며, 이 한국성을 보다 자유롭고 적극적으로 다룬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서울 꼬뮌 2026’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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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s studies

‘서울 꼬뮌 2026’은 비트라뮤지엄에서 전세계 젊은건축가들을 초청해 진행한 <OPEN HOUSE> 전시에 출품된 안이다. 20년 뒤 지어질 수 있는, 즉 실현가능한 미래주택을 제안하는 전시로, 조민석 씨는 압구정 현대아파트 재개발 안으로 ‘서울 꼬뮌’을 제안했다. 이는 조민석씨가 꾸준히 진행해온 매트릭스 스터디(수평도미노를 조금씩 변형시켜 다양한 수직타워를 만들어낸)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여러 유형을 만들고 이를 다양하게 조합하는 방식으로 수직타워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조민석 씨는 청자와 백자 형태를 태연하게 인용한다. 형태의 아이디어를 한국 도자기에서 가져오지만 직설적이지도, 경도되지 않은, 그래서 더 한국적인 인상을 갖는 거리두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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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방 팀이 <신선놀음>에서 표현하고 싶었던 ‘한국적 판타지’ 역시 같은 내러티브를 갖는다. “살인의 추억이나 올드보이처럼 건축에서도 우리의 정서를 드러낼 수 있을까하는 생각에 <신선놀음>이라는 한국적 판타지를 밀었던 것같다(박천강)”  여기서 문지방 팀의 ‘한국적 판타지’가 갖는 차이라면 오브제나 형태를 통한 표현이 아니라, ‘이미지’를 통한 정서의 표현이라는 부분이다. ‘우리 문화에 대한 재미난 은유’를 하나의 이미지로 표현한 것이다. 심사위원이었던 박길룡 교수님이 말한 ‘시노그라피’는 이 부분을 정확하게 짚어낸다. 무대와 같은 하나의 장면을 연출해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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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무실 혹은 건축가에서 건축에 접근하는 태도와 방식이 이어지고 새로운 변주가 나오는 흐름은 한국건축에서 찾아보기 힘든 현상이다. 이런 현실에서 매스 키드의 등장은 DNA의 추적을 가능하게 하는 세대의 등장이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반면 아이러니하게도 매스스터디스의 경영 위축으로 사무실 규모를 줄여야했던 시기가 ‘매스 키드’의 이른 등장을 가져왔다는 것. 이들의 길이 험난하겠지만 건투를 빌고 싶은 이유다.

*참고로 모든 이미지는 구글에서 검색되는 이미지만 올립니다. 보다 자세한 자료와 이미지는 매스스터디스 홈페이지에 아주 상세하게 나와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