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비엔날레는 무엇인가 _ SPACE 0811

글 / 사진 _ 임진영 기자

SAMSUNG DIGITAL CAMERA

“건축 전시, 건축 비엔날레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우리는 건축이 단순히 건물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위의 공간, 우리를 직접 둘러싸고 있는, 우리의 사회생활을 둘러싸고 있는 공간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라는 점을 명확히 하고 건축을 전시한다. 건축은 시각과 현실이 만날 때 제대로 작동하고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의 조직에 적용되는 상상력이기 때문에 건축 전시작이 주로 실험과 상상으로 구성되는 것도 무리는 없다.” 

-파올로 바라타 + 아론 베츠키

SAMSUNG DIGITAL CAMERA

건축 전시는 늘 딜레마를 안고 있다. 미술이나 음악, 댄스 페스티벌처럼 오리지널 작품을 감상하고 즐기기가 어렵다. 전 세계에 흩어진 거대한 구조물들을 옮겨 올리도 만무하다. 우리는 늘 축소된 모형이나 스케치, 도면과 사진을 통해 건축 프로세스와 결과물을 대신한다. 과연 우리에게 건축비엔날레는 무엇인가? 비엔날레를 통해 무엇을 논하고, 얻고, 이야기할 것인가? 베니스비엔날레 조직위원장인 파올로 바라타는 이미 존재하는 건축물을 가져오거나 복제하고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전시의 의미는 아니라고 못을 박는다. 비엔날레는 건축가의 화합의 장이나 비평 에세이, 논의의 장이 아니라 그 자체의 언어로 어떤 것을 표상하는 한 방식이라고 표현한다. 즉, 시각적 오브제와 시각적 감성을 통해 말하고, 그 시각적 감성에서 시작해 사색과 사고를 촉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도시, 건축과 사회>라는 주제로 열렸던 2006년 이후 다시 건축을 말하기 위해, 제11회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건축전은 총감동 아론 베츠키가 던지는 화두, ‘저 너머; 건물을 넘어선 건축’과 함께 돌아왔다.

‘저 너머; 건물을 넘어선 건축’이라는 주제는 두 가지 함의를 갖는다. ‘건축은 건물이 아니다’라는 명제는 다시 ‘건물은 건축이 아니다’라는 의미가 된다. 단순하고 포괄적이어서 어쩌면 위험한 이 질문에 대해 아론 베츠키는 건물이라는 닫힌 개념을 넘어서면 건축가들이 더 많이 참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해법이나 최종 결과물을 제안하기보다 건축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질문을 던지는 일에 더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엔날레는 해결책이 아니라 대안을 제시하기 위한 자리, 불확실한 열린 결말을 제시하는 곳이 된다.

아론 베츠키의 이런 주제는 건축을 오브제나 건축하는 행위에서 좀 더 확장시킨다. “건물에 관해 사고하고 이야기하는 방식”이며, “어떻게 건물을 표현하고 건설하는가”에 대한 논의다. 단지 물리적인 구축물이 아니라 일상을 넘어서는 가능성에 주목하고, 의미와 감각이 있는 공간을 만들어내기 위해 실험적인 건축을 주문한다. 나아가 건축이 현대적인 이 세계에서 집처럼 편하게 느낄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는 이미 존재하는 건물이나 사회 문제에 대한 관념적 해결책 대신 신기술이나 콜라주와 아상블라주, 재활용과 재건축, 파괴와 변형, 유토피아나 디스토피아의 심상 등 모든 것에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아르세날레에서는 주제에 가장 가까이 응답하고 있는 세계적인 건축가들의 인스톨레이션 전시와 <언이터널 시티>, <로마 인테로타>, 온라인 공모전 <에브리빌>과 같은 부대 전시가 펼쳐졌으며, 지아르디니에서는 실험적 건축을 비롯한 각 국가관의 전시가 동시다발적으로 펼쳐졌다. 전시 기간 동안 베시스 곳곳에서는 <이외른 우촌>, <마르코스 노박> 등 다양하고 수준 높은 건축 전시가 벌어졌음은 물론이다.

건축의 본질을 탐구하는 주제, ‘저 너머; 건물을 넘어선 건축’은 건축가에게 던지는 질문인지, 건축 외 분야에 던지는 구호인지, 아니면 순수한 학문적 열정에서 나온 탐구 대상인지 모호할 만큼 폭이 넓다. 그에 비해 주제에 대응하는 국가관과 주제관은 숙고한 생각을 기대 이상의 세련된 방식으로 보여준다. ‘건물을 넘어서’라는 주제를 직설적으로 해석해 물리적 실체만 사라져버린 일부 전시를 제외하면,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는 건축 전시의 한계를 넘어서는 흥미로운 태도를 읽어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건축과 건축가의 본질에 대해서도 그 의미를 확장할 기회를 얻는다. 건축이라는 행위가 오브제나 물리적 실체에 머물지 않으며 그 한계를 넘어서는 다양한 참여, 실천, 해결책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비엔날레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대부분의 국가관이 공모를 통해 전시 주제를 정하고 있어, 베니스 비엔날레가 참신한 아이디어로 무장한 젊은 건축가나 큐레이터의 국제 무대 등용문이 되고 있다는 사실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출신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기도 해, 주제 공모에 대한 각 국가관의 치열한 모색 과정을 짐작케 한다.

프레스 오픈에만 2,000명에 가까운 전 세계 언론인이 참여하는 등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건축전은 그 어떤 건축 행사보다 양과 질에서 모두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클릭 한 번이면 접속가능한 정보화시대에 건축에 대한 열정을 가진 이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을 수 있는 힘은 어쩌면 존재만으로 매력적인 도시, 베니스의 힘일 것이다.

IMG_3780

080913- 068

RAUMLABOR-2080913- 023

매스 키드(mass studies kid)의 등장 1

001

박천강(왼쪽), 권경민(가운데), 최장원(오른쪽)

국립현대민술관과 현대카드가 의욕적으로 추진한 젊은건축가프로그램(YAP)에 당선된 문지방 팀이 흥미로운 것은 그들이 ‘매스 키드(mass studies kid)의 등장’을 알리는 또 다른 지표이기 때문이다.문지방팀의 세 멤버-박천강, 최장원, 권경민이 당선되었을 때, 건축계에서 그 이름을 바로 알아보는 사람이 드물었는데, 이유는 선후배 라인으로 연결된 네트워크에 들어있지 않아서다. 그들의 공통점은 하나, 매스스터디스에서 실무를 쌓은 젊은건축가라는 것이다.

파티 패드 (Party Pad), 조 슬레이드 아키텍처, 2003

파티 패드 (Party Pad), 조 슬레이드 아키텍처, 2003

이들이 가진 장점은 조민석 씨의 파빌리온 프로젝트와 다양한 프로젝트를 통해 현장에서 실무를 쌓고그 태도와 접근하는 방식을 몸으로 습득했다는 것에 있다. 여기서 잠깐 2003년 뉴욕 PS1 프로젝트로 시작해 조민석 씨의 파빌리온 프로젝트를 들여다보자. 조 슬레이드 아키텍처 이름으로 최종 5명에 들어간 ‘파티 패드 (Party Pad)’는 ‘손쉽게 운반되고 즉흥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가벼운 구조물’을 추구, 에어벌룬으로 만든 원형지붕과 풀 패드를 제안한다.

높은 호평을 받았음에도 제작방식의 리스크와 보다 건축적인 안을 당선시켰던 당시 분위기에서 아쉽게 당선되지는 않았지만, 치밀한 리서치와 분석 끝에 유쾌하고 쉬운 해법을 내놓는 조민석 씨의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링돔 프로젝트, 매스스터디스, 2007

링돔 프로젝트, 매스스터디스, 2007

조민석 씨가 파빌리온으로 주목을 받은 것은 바로 링돔 프로젝트다. 링돔은 2007년 뉴욕 스토어프론트갤러리 2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26일간 진행된 ‘퍼포먼즈 A-Z’를 위한 임시구조물이다. 천 여개의 훌라우프를 흔히 쓰는 집 타이로 묶어 지름 8.65M의 거대한 돔형 구조체를 만들었다. 훌라우프를 여러 겹으로 엮어내면서 자체적인 구조 안정성을 갖게 한 것인데, 그러니까 문방구에서 파는 훌라우프와 집타이로, 기술자가 아닌 일반인들 누구나 지을 수 있는 구조물이다. 훌라우프 일부에는 발광체를 넣어서 밤에는 은은한 빛을 내게 하고, 낮에는 흰색 PVC 원형들이 교차하면서 단순하면서도 효과적인 기하학 패턴을 보인다.

_MG_1165

링돔 프로젝트에서 조민석 씨가 중점을 둔 것은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물을 가지고 임시 구조물을 구축할 뿐만 아니라 만드는 과정 자체에 주목하며, 심지어 해체될 때도 다시 훌라우프를 나눠주어 폐기물 없는 파빌리온 프로젝트를 만들고자 했다는 것이다.

twwg_2069518210_airforest15

두번째로 주목할 조민석 씨의 파빌리온 프로젝트는 바로 ‘에어포레스트’다. 2008년 미국 덴버에서 열린 민주당전당대회를 위한 문화행사 ‘다이알로그:시티’를 위해 설치된 가설 파빌리온이다. ‘시티 파크’의 넓은 공원 잔디밭에 30일 동안 다양한 문화행사를 진행하기 위한 이 임시구조물에서 조민석 씨는 헥사곤 모양의 유닛 9개와 35개의 기둥으로 이어진 에어벌룬 구조물을 제안한다. 구조물은 재단된 하나의 천으로 이어져있다. 기둥 아래에서 공기를 불어넣으며, 약간의 흙과 조명장치만으로 고정되는 이 파빌리온은 지극히 가볍고 유연하게 열린 공간을 구축한다.

4225302787_f1d1af8130_o

ⓒmass studies

실현되지 않았지만 구겐하임 미술관에 제안한 ‘ART TRAP’도 조민석 씨의 위트를 엿볼 수 있는 또 다른 설치물이다. 구겐하임 스파이럴 계단에 사람들이 매달릴 수 있는 구조물을 제안한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파빌리온 프로젝트들이 뉴욕에서 활동하다 한국으로 돌아온 조민석 씨가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유지하고 확장하는 초석이 되었다는 것이다. 명쾌한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파빌리온 프로젝트의 장점 중 하나다. 그러나 조민석 씨의 이 말랑말랑하고 명쾌한 해법이 힘을 갖는 것은 초기의 방대한 리서치와 분석의 힘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즉, 현상과 배경의 분석은 치밀하게, 해법은 쉽고 경쾌하게 풀어내는 것이다.

조민석 씨의 이 태도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스 키드를 주목할 이유가 생긴다. 문지방 팀의 권경민 씨는 에어포레스트의 현장실무자였고, 이후 광주의 빈집을 거치며 공공프로젝트에서 실무를 쌓았다. 최장원 씨 오르도스 프로젝트 등 다년간의 실무를 쌓고 독립한다. 여기서 박천강 씨의 이력이 흥미로운데, 매스에서 경험은 비교적 짧지만, 예일대를 졸업한 후 SANAA에서 실무를 쌓고 이어 SANAA에서 돌립한 플로리안을 따라 SO-IL에서 실무를 쌓았으며, 국제갤러리3관의 책임건축가로 경력을 쌓았다. 이 탄탄한 실무 경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말할 필요가 없다. 건축가 민성진 씨가 지적했듯이, 스타아키텍트의 사무실을 돌며 6개월, 1년 미만의 인턴쉽을 경력에 한줄 넣고 이력서를 채우는 것이 얼마나 의미없는 일인지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그런 인턴쉽은 경력에 도움도 되지 않을 뿐더러 실제로 무엇을 체득했느냐에 대한 문제에선 언제나 물음표를 남기기 때문이다. 그러니 간판 수집으로 이력을 채우려는 잔머리는 부디 넣어두시길. 차라리 프로젝트 하나를 현장에서 직접 부딪히고 체득하는 것이 낫다.

이야기가 잠시 샜지만, 결국 매스스터디스에서 만난 이 세 사람은 젊은건축가프로그램의 파빌리온 프로젝트를 통해 뭉쳤고, SO-IL과 매스스터디스에서 경험한 파빌리온 프로젝트를 통해 남다른 감과 자신감을 드러낼 수 있었다.

002

문지방 팀은 이 YAP 프로그램에서 하나의 이미지를 떠올리고 이를 구체화하는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는데, 여기서 ‘한국적 판타지’라는 말과 ‘이미지’, 그리고 ‘경험’ 세 가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먼저 ‘한국적 판타지’는 한국성을 다루는 또 다른 방식을 보여준다. 2005년 조민석 씨의 공간 특집을 진행할 때, 조민석 씨의 등장을 임권택 감독 세대와 비교되는 박찬욱 감독의 등장에 비유한 기사를 쓴 적이 있다. 취화선의 2002년 칸영화제 대상 수상이 ‘우리 것이 세계적인 것’임을 확인받고 싶어 하는 우리의 보이지 않는 갈망을 충족시킨 것이라면,  2004년 박찬욱 감독의 칸영화제 대상과 김기덕 감독의 베를린, 베니스영화제 감독상 수상은 단지 독특한 자신의 세계를 완성도 있게 표현한 ‘한국 출신’ 감독의 쾌거다. 조민석 씨는 이전 세대가 짊어진 ‘한국성’이라는 굴레와 거리두기에 성공했으며, 이 한국성을 보다 자유롭고 적극적으로 다룬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서울 꼬뮌 2026’이다.

seoulcommune4 - 복사본

ⓒmass studies

‘서울 꼬뮌 2026’은 비트라뮤지엄에서 전세계 젊은건축가들을 초청해 진행한 <OPEN HOUSE> 전시에 출품된 안이다. 20년 뒤 지어질 수 있는, 즉 실현가능한 미래주택을 제안하는 전시로, 조민석 씨는 압구정 현대아파트 재개발 안으로 ‘서울 꼬뮌’을 제안했다. 이는 조민석씨가 꾸준히 진행해온 매트릭스 스터디(수평도미노를 조금씩 변형시켜 다양한 수직타워를 만들어낸)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여러 유형을 만들고 이를 다양하게 조합하는 방식으로 수직타워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조민석 씨는 청자와 백자 형태를 태연하게 인용한다. 형태의 아이디어를 한국 도자기에서 가져오지만 직설적이지도, 경도되지 않은, 그래서 더 한국적인 인상을 갖는 거리두기다.

seoul_commune2026_page_2webkonstruktion

1111 - 복사본32_10 - 복사본 ⓒmass studies

문지방 팀이 <신선놀음>에서 표현하고 싶었던 ‘한국적 판타지’ 역시 같은 내러티브를 갖는다. “살인의 추억이나 올드보이처럼 건축에서도 우리의 정서를 드러낼 수 있을까하는 생각에 <신선놀음>이라는 한국적 판타지를 밀었던 것같다(박천강)”  여기서 문지방 팀의 ‘한국적 판타지’가 갖는 차이라면 오브제나 형태를 통한 표현이 아니라, ‘이미지’를 통한 정서의 표현이라는 부분이다. ‘우리 문화에 대한 재미난 은유’를 하나의 이미지로 표현한 것이다. 심사위원이었던 박길룡 교수님이 말한 ‘시노그라피’는 이 부분을 정확하게 짚어낸다. 무대와 같은 하나의 장면을 연출해내는 것이다.

114

한 사무실 혹은 건축가에서 건축에 접근하는 태도와 방식이 이어지고 새로운 변주가 나오는 흐름은 한국건축에서 찾아보기 힘든 현상이다. 이런 현실에서 매스 키드의 등장은 DNA의 추적을 가능하게 하는 세대의 등장이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반면 아이러니하게도 매스스터디스의 경영 위축으로 사무실 규모를 줄여야했던 시기가 ‘매스 키드’의 이른 등장을 가져왔다는 것. 이들의 길이 험난하겠지만 건투를 빌고 싶은 이유다.

*참고로 모든 이미지는 구글에서 검색되는 이미지만 올립니다. 보다 자세한 자료와 이미지는 매스스터디스 홈페이지에 아주 상세하게 나와있습니다.

새 건축전문지 DOCUMENTUM 1호

001드디어 1호.
정기구독을 신청한 상태지만 실물을 궁금해하던 차에 프랙티스 사무실에서 다큐멘컴 1호를 만났다.DOCUMENTUM 이라는 글씨와 1이라는숫자만 자리하고 있는 선명한 형광주황색 표지. 과정을 기록한다는 것은 왠만한 애정과 열정이 아니고는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다큐멘텀이라는 제호를 들었을 때, 참신함에 반가웠지만 쉽지 않은 길을 선택했구나하는 생각도 동시에 했더랬다.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사람의 고생길이 훤한 것이다.그럼에도, 매체의 정신은 심장과 같아서 만드는 사람들의 심장이 뛰면 뛸수록 주변에 그 박동이 전해지고 파동이 커지기 마련이다. 몇십 년 동안 이어진 건축잡지의 전형을 깨고 자신만의 형식을 만든다는것. 자신만의 목소리와 정신을 가지고 무언가를 제대로 만들어내려는 사람들이 점점 드물어지는 때에, 단 한줄로 설명되는 선명한 매체의 의지를 보면 반갑고 반갑다.더구나 1호는 한국의 프로젝트만으로 구성되어 있다. 세계로 진출하려면 방향은 더 넓어질 수 있겠지만, 한국의 프로젝트만으로 한 권이 구성된 저널을 보니, 뭔가 감회가 새롭다. “가까이 들여다보면 아름답지 않은 건축물이 없다”라는 황두진 소장님의 말처럼, 사진 프레임 안에 담긴 시선과 편집에서 한국 건축가들에 대한 애정이 보인다. 건축물의 이면에 담긴 이야기들, 배경에 대한 기록은 그래서 더 중요해진다.

무엇보다 첫 호에 실린 프로젝트의 생동감이 반갑다. 김찬중 소장님의 신작도, 김광수 소장님의 신작도 40대 건축가가 보여주는 자신감과 실험이 가득하다. 전체적으로 일관된 톤으로 보정된 사진의 퀄리티와 차분한 편집도 좋고,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 욕심내지 않은 출발도 좋다. 자신을 드러내려 애쓰다 빈약한 잣대를 들이대는 대신 담담한 기록자의 태도를 갖는 것도.

0호 제작이라는 방식도 발행인다웠지만, 과정의 꾸준한 기록은 꾀를 부리지않고 우직한 김상호 편집장을 많이 닮았다. 콘텐츠에 대한 고민은 꾸준히 이어질 것이고, 매번 메인으로 다룰 다큐멘테이션은 지루하고 힘든 과정일 거다. 하지만 그 기록이 쌓인다면, 그건 한국 건축의 한 단면에 대한 긴 서술이 되지 않을까. 긴 마라톤을 시작한 다큐멘텀에게 응원을 보낼 수 밖에 없는 이유.

PS. 누군가의 마음씀을 고맙게 받아주고 그 고마움을 기억해주는 사람들도 감사하다. 서로의 존재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는 것이 쉽지 않은 세상에.

 002 003 004 006

 

 

 

 

건축가라면 놓치지 말아야 할 책_미지에서 온 소식 NEWS FROM NOWHERE

009 워크룸 서재에서 발견한 근사한 책. 꽤 늦은 뒷북이다. 지난 연말을 꽤 정신없이 보낸 탓에 문경원, 전준호 작가의 프로젝트를 이제서야 발견했다. <미지에서 온 소식 NEWS FROM NOWHERE>. 카셀도쿠멘타에 초청된 문경원, 전준호 작가의 프로젝트로 영상, 설치, 단행본으로 기획되었고 그 과정이자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다. 카셀도쿠멘타에 출품된 영문판과 한글판 두 종류의 책이 워크룸에서 출판된 것. 윌리엄 모리스의 “미지에서 온소식”에서 따온 이 프로젝트는 윌리엄 모리스가 그린 달콤한 미래에 의구심을 던지는 동시에 종말이라는 세계의 끝에서 다시 아름다움과 예술의 가치를 묻는다.

인류가 종말을 고한 이후, 예술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책은 인류 종말을 전제로 문학, 과학, 인문, 종교 등 각 분야의 석학들과 패션디자이너, 건축가, 영화감독 등 예술인들에게 예술의 사회적 기능과 역할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인터뷰, 프로젝트, 에세이 등을 한 자리에 엮어냈다. 석학들과 함꼐 우리 시대를 분석하고 진단하며 이를 토대로 미래 사회를 그려내고, 디자인그룹, 건축가, 패션디자이너, 과학자들은 종말 이후 미래의 세계를 구체화하는 주거 시스템, 물병, 유니폼 등을 만들어냈다. 최재천, 이창동, 조정환, 토요 이토, 이에무라 카요코, 이마무라 유사쿠, 타크람 디자인 엔지니어링, 고은, 에릭 쿠, 한스 올리히 오브리스트, MVRDV, 크리스토퍼 도브라이언, 토시 이치야나기, 홍철기, 미산, 츠무라 코스케, 정구호, 정재승, 유진규, 정상문까지.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름도 매혹적이다. 의식주라는 가장 기본적인 욕구의 충족이 우선인 세계의 끝에서 아름다움의 가치를 묻는 작가들의 대담함과 이를 균형있는 시각으로 담아낸 큐레이팅 능력에 더욱 반할 밖에. 한 분야의 상상력만으로는 빈약할 수 있는 이야기구조가 여러 분야의 석학들과 협업을 통해서 탄탄한 이야기구조를 갖고 있으니, 달리 통섭의 시대가 아닌 듯하다.

003005

흥미로운 것은 토요 이토의 <모두의 집>과 일본작가들의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가 시작되었을 때만 하더라도 311 동북아대지진이 있기 전이라고 한다. 이 프로젝트에 대해 그저 흥미로운 주제라고 반응하던 일본작가들은 3월 11일, 대지진이 일어난 후 일제히 프로젝트에 적극적인 참여 의사를 밝힌 메일을 보내왔다고 한다. 그들에게 재난은 이제 미래가 아니라 겪어낼 참혹한 현실이었으니 그 무게와 성찰이 사뭇 다르다. 여기에 지진 이후 집을 잃은 사람들을 위한 공공의 쉼터를 제안한 도요 이토의 프로젝트가 60여 페이지에 걸쳐 소개되면서 이 책은 막연하고 긍정적인 유토피아도 암울하고 침잠한 영화 속 미래 도시도 아닌 현실의 세계로 들어온다. (다소 늦은 그의 프리츠커상 수상에 강력하게 힘을 보탠 것이 바로 이 <모두의 집>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을 듯하다.) 대재난이라는 현실을 바탕으로 미래를 성찰하는, 근래에 들어 가장 현실적이고 묵직한 미래 이야기가 아닐까.

006

한국어판의 까만 책표지는 성경책을 생각했다고 한다.(워크룸 김형진) 종말 이후의 바이블이랄까. 어쨌든 영문판의 정성들인 양장 제본과 클래식한 본문 편집이나, 본문에 실린 도요 이토 사무실의 스케치 – 그러니까 건축 잡지에 소개되는 스케치가 아니라, 주민들을 설득하고 신뢰를 얻기 위해 형형색색 그림으로 그려낸 스케치들 – 그리고 디자이너들의 스케치와 실물 모형들, 여전히 아이디어 충만한 MVRDV의 버블주거시스템의 이미지도 흥미롭다. 미래에 관한 건축의 상상은 끊임없이 있었지만, 이 책은 인문학과 과학에서 출발할 뿐 아니라 미래, 재난, 예술적 가치라는 질문을 동시에 던짐으로써 막연한 긍정으로 구축한 판타지나 암울하고 우울한 기계문명 도시를 넘어서는 구체적인 고찰을 하게 한다. 건축을 한다면 놓치지 말아야 할 책이다.

010

공통의 토대에서 길을 잃은 한국관, 제13회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 / WIDE 10월호

ⒸJinyoung Lim

건축을 통해 아이디어와 비전을 공유하다

ⒸJinyoung Lim

지난 8월 29일 개막한 제13회 베니스 비엔날레는 총감독 데이빗 치퍼필드의 지휘 아래 ‘공통의 기반’이라는 주제를 제시한다. 데이빗 치퍼필드는 이 주제를 통해 지속성, 콘텍스트, 그리고 기억을 바탕으로 그 영향력과 기대감을 나누며, 전문가와 사회 사이에 서로에 대한 이해가 결여되어 있는 우리의 현실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이를 다루고자 했다. 다소 포괄적이고 광범위하게 해석될 수도 있지만 베니스비엔날레 이사장인 파올로 바라타(Paolo Baratta)의 말대로 올해 주제는 많은 생각, 아이디어와 갈등을 내포한다. 지난 시기 건축가들은 주변 건물과 도시 개발의 평범함에 대항해 마치 비명을 지르는 듯한 오브제를 만들어왔지만 결국 도시나 개별적인 삶의 조직에는 조금도 개입하지 않았으며, 이 전시는 바로 그 건축과 시민 사회 사이의 균열을 바로 잡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전시의 의도는 상반된 평가를 받는 것들을 함께 전시하고, 과거와 현재 모두와 건축 사이의 관계, 그 아이디어와 시스템을 깨닫는 장소를 제공하려는 것임을 분명히 한다. 개별 작품을 기념하는 대신 다양한 건축가들의 작업으로 채우려는 의도도 포함해서 말이다. 데이빗 치퍼필드 역시 개별적인 스펙타클이 아니라 집단 가치의 현상을 드러내고 일상을 위한 환경으로써 건물의 중요함을 주목하며, 우리를 둘러싼 세상에 대한 감성과 이해가 중요함을 상기시키고자 한다.

‘공통의 기반’이라는 평범해 보이는 문구 아래, 비엔날레는 건축과 사회, 도시 계획과 건축, 수많은 갈등과 모순, 질문도 담고 있다. 케네스 프램프튼의 ‘비판적 지역주의’와 렌조 피아노의 홍콩 HSBC 빌딩 등의 출현이 구닥다리 같다는 시선을 던지는 저널이나, 건축의 타협을 비난하는 쿱 힘멜블라우의 성명, 그리고 열정과 영감이 사라진 건축에 대한 프랭크 게리의 공개적인 비난처럼, 이번 비엔날레는 극명한 두 입장이 충돌하고 있는 현장이기도 하다. 결국 올해 건축비엔날레는 지난 십 여 년 동안 거대자본과 밀월 관계를 가져온 오브제 중심의 건축에 대한 전면적인 반성과 금융 위기 이후 우리가 함께 모색해야 할 공동의 가치, 건축의 본질과 근원을 통해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아이디어와 비전, 태도를 공유하기 위한 열린 장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대형설계사무소와 젊은 건축가의 어색한 동거

ⒸJinyoung Lim

그런 의미에서 대형설계사무소와 신진 건축가를 한 자리에 모은 한국관의 주제는 어쩌면 전체 주제에는 적합한 대응이었을지도 모른다. ‘공통의 기반’이라는 주제에서 건축의 윤리와 사회적인 측면을 강조하고, 한국건축의 대중적인 측면을 담고자 했다는 한국관의 커미셔너 김병윤 교수의 말처럼, ‘우리 건축 현장에서 불협화음의 원인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왜 우리의 건축 현장은 폐쇄적이고 과열되며 분열되고 있는지’, 그리고 과연 ‘우리는 무엇을 담보하고 있는지’라는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건축은 턴키 위주의 대형화로 치닫고 있고 일부 대형사무실만 참여하는 것이 사실이다. 여기에는 건축의 과열과 긴장, 비대한 현상, 과도한 경쟁, 출혈, 비리 등이 다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한국건축의 증상을 가리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드러냄으로써 기록해보자는 바람이었다.” 커미셔너 김병윤 씨의 설명이다. “대형설계사무소 대표들을 작가로 내세워 세계에 자랑한다는 개념이나 면죄부를 주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턴키 같은 제도도 우리 시대가 만들어놓은 산물이기 때문에 그 영역에도 건축이라는 요소가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이 내 목표였다.” 이는 우리 시대의 사회적 역량이 부족해서 나타나는 건축물들이 건축가 만의 책임은 아니라는 의견과 왜 우리가 이런 건축물을 만들고 있는지 생각해봤으면 좋겠다라는 의도도 포함한다.“건축을 걷다”라는 주제는 이를 표현하는 방식으로, 한국관 안에 산책을 하듯 걸을 수 있는 나무의 숲을 조성하는 것이 초기 컨셉이었다. 전시장의 구성은 고 백남준의 작업에 영향을 받아 마치 파편화된 영상이 파열음처럼 흩뿌려진 숲을 거닐며 건축을 관람하는 방식으로 구상했다. “건축가는 보이지 않고 건물만 보이도록 한 것이 초기 의도였다. 그러나 건축가들이 부각되길 원하는 바도 있어서 영역을 구분하고 8개의 다른 표현으로 점점 방향이 바뀌었다.” 여기에 “각기 다른 태도를 가진 건축가와 작업이 의도적으로 모호한 하나의 풍경으로 읽히도록 하기 위해(부큐레이터 유현준 홍익대 교수)”, 각각의 영상작업에 대한 소개와 작가의 이름은 없앴다.

5개의 소주제로 써내려 간 8개의 시나리오

커미셔너가 제시하는 한국관의 키워드 중 주목할 것은 포스트 모더니즘 이후 대형화되고 있는 모습을 주목한 ‘포스트 맥스(Post-Max)’와 경쟁과 선택의 과정을 통해 드러나는 도시 건축의 표정에서 읽어낸 ‘포스트 그레이(Post Grey)’다. 여기에 ‘상호작용성’, ‘친환경성’, ‘장소의 기억’, ‘감각의 구축’, ‘섬세함과 감촉성’이라는 5개의 소주제를 통해 한국건축의 대중적인 측면을 담고자 했으며, 각각 지명공모와 일반공모로 선정한 대형설계사무소와 신진 건축가들을 한 자리에 모아 주제를 제시했다. 8명의 참여건축가는 이 소주제를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구성하고 영상으로 풀어내 각각의 이야기를 담았다. <부상과 직조, 김태만(해안건축 대표)>, <회상, 한종률(삼우건축 부사장)>, <느림과 재편, 이상림(공간 대표)>, <장소와 정서, 박승홍(DMP 건축 대표)>, <지속, 오영욱(odda 소장)>, <연결, 박진택(Jtparchitecture 대표)>, <표현, 윤창기(경암건축 대표)>이다.

전시장은 단순한 목구조물와 한지를 사용하여 8개의 영역을 만들고, 각각의 영역에 개별 건축가의 영상을 설치하고, 입구에는 각각 다른 지위, 다른 환경에서 활동하는 건축가들의 일상을 보여주는 영상물을 두고 있다. 개별 영상에서 김태만은 <Floating & waved ground>를 통해 서울추모공원, 플로팅 아일랜드, 여수세계박람회 국제관을 소개하며, 각 건축물을 활용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영상에 담았다. 박승홍은 <Reconciliated ground>라는 주제로, 서로 다른 장소와 배경에 따라 다른 해석과 상이한 결과를 가져오는 과정과 이를 해석하는 건축가의 시선을 보여주고자 했다. 즉 서울시청 응모작, 노들섬 복합공연예술 공연장, 경기도청사라는 세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건축가가 그려낸 스케치를 실제 그 장소의 소리, 빛, 환경을 촬영한 동영상과 함께 보여주는 방식이다. <Slow & recited ground>라는 주제를 접근한 이상림은 건축설계뿐만 아니라 공간지, 공모전과 문화운동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쳐온 공간의 복합적이고 독특한 활동을 보여주기 위해 ‘정보 시각화’의 방법을 택했다. 즉 전세계에 걸쳐 진행되는 크고 작은 프로젝트를 시각화된 수치로 보여주고 각각의 프로젝트를 재해석해 건축 지표에 따라 분류, 전달하는 영상을 보여준다. 한종률은 <Remembrance ground>라는 주제로, 서울시립미술관, 서울역 문화공간, 명동예술극장이라는 세 근대건축물의 리노베이션 작업을 통해, 일제시대 근대건축 활용이라는 한국의 특수한 상황과 사람들의 기억에 대한 영상을 담았다.

‘Juxtaposed ground’라는 주제를 풀어간 오영욱은 도심 보행권이 박탈당해 차와 사람이 늘 엉켜있는 강남의 작은 교차로를 관찰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여기에 도로 작업 안내 마네킹 로봇을 주인공으로 삼아 서울 도심의 이면도로에 거리 주차를 막는 새로운 직업을 제안하는 우화적인 애니메이션으로 인간을 위한 보행공간을 말한다. 김현수는 예술가들과 함께 ‘Restructured ground’라는 주제로 비워진 공간을 탐구하는 영상을 소개한다. 빈 여백을 먹으로 그려나가며 채우는 행위와, 작은 사찰의 빈 공간을 30명의 학생들과 함께 빛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을 영상에 담아 빈 공간 자체의 미학과 의미를 나누고자 했다.

모호한 주제와 불명확한 태도

불행하게도 한국관의 전시가 초기 의도를 명확하고 일관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전시는 서로 연관 없는 작업의 연속으로 흐르며 길을 잃은 것처럼 보인다. 목재와 한지라는 박제된 전통 요소의 차용은 전시 주제와 어떤 연결고리를 찾을 수 없고, 전시의 일관성과 콘셉트를 표현해야 할 포스터 역시 아마추어 수준의 디자인을 드러내면서 한국관 전시의 힘을 떨어뜨린다. 무엇보다 ‘건축을 걷다’라는 평화롭고 시적인 주제는 한국의 건축 현장에서 벌어지는 과열 경쟁과 불협화음, 방치된 대형설계사무소의 영역을 함께 끌어들이겠다는 커미셔너의 의도와 전혀 어울리지 못하고 출발부터 모순을 드러낸다. 결국 참여 건축가 각자의 위치나 태도, 건축 방식에 대한 고민이나 반성, 현실에 대한 성찰이 없다는 점에서 전시 의도는 실제 전시와 긴밀한 연관과 메시지를 담지 못하고 괴리감을 불러일으킨다. 결국 대형설계사무실의 참여를 통해 한국 건축 현장의 다양함을 이야기하고자 했던 커미셔너의 의도는 한지의 불투명한 그림자처럼 모호해지고 건축계의 평가나 비평이 개입되지 않고 어떤 성찰도 없는 개별 사무실 프로젝트에 대한 소개 영상만 남은 셈이다.

여기에 일부 참여 건축가가 직접 영상에 등장해 소개하는 방식은 전시의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가 될 뿐만 아니라 홍보 영상의 느낌도 지울 수 없다. 자막의 길이나 속도를 맞추지 못해 실제 내용을 전혀 전달하지 못하는 <Floating & waved ground>의 기술적인 문제 역시 주의를 기울여야 할 부분이며, 특히 발자국을 따라가며 주위 소리와 풍경을 상상하면 새로운 건축의 이미지로 전환할 수 있다는 개념에도 불구하고 국제 전시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Linked & signposted ground>의 영상 표현은 순진하기까지 하다. 영상이라는 매체는 건축을 대중적으로 전달하는데 효과적일 수 있지만 그렇다고 영상이 쉬운 매체는 아니라는 말이다. 전체 전시에서 전달하는 정보의 양도 문제다. 개별 영상의 길이는 짧게는 6분, 길게는 15분을 훨씬 넘는 분량으로 제작되어 과연 관람객이 집중해서 볼 수 있는 조건이었는가라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영상의 길이가 2분 30초대에 머물러서 개별 영상의 메시지가 관람객에게 명확하게 전달되었어야 하지 않았나 싶다. 커미셔너의 의도에 참여 건축가들이 적극적으로 따랐으면 좋았을텐데하는 아쉬움도 있다.(이상림)”

결과적으로 ‘의도된 모호함’을 통해 한국건축의 다양한 태도와 현장을 보여주려는 커미셔너의 의도에도 불구하고 한국관은 불명확한 인문학적 수사 아래 각기 다른 건축가의 불명확한 태도가 한데 엮이고 있으며, 여기에는 자신을 작가로써 드러내고자 하는 건축가의 욕망도 뒤섞여 있다. 모호함은 민망함과 구태의연함으로 바뀌고, 한국관이라는 공통의 기반 위에 이렇다 할 이슈나 메시지 대신 동상이몽을 드러내고 있는 형상이다. 주제를 중심으로 참여 건축가를 선정한 커미셔너의 의도에도 불구하고, 주제의 모호한 표현과 개별 건축가의 의지만 부각된 결과다.

베니스 비엔날레는 국제적인 건축축제다

“처음부터 대중성에 대해 더 진지하게 보여주려고 했다면, 정확하게 그 과제에 해당하는 프로젝트를 사건별로 구분해서 끄집어내는 것이 건축의 사회성과 대중성을 보여주기에 적정했겠구나 하는 아쉬움은 있다.(김병윤)” 특히 한국관에서 아쉬운 것은 대형설계사무소와 아뜰리에, 소규모사무실 등, 다양한 규모와 조직으로 이루어진 한국의 건축 지형을 보여주기 위한 객관적이고 일관된 태도를 가진 비평의 시각일 것이다. 건축가 선정과정의 갈등과 오해, 비판에서 보듯, 누가 그곳에 나가야 하는가라는 소모적이고 감정적인 논쟁이 아니라, 각자의 입장과 태도, 결과물을 통해 그곳에서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논의해야 하기 때문이다.

폴란드관 ⒸJinyoung Lim

무엇보다 베니스 비엔날레는 전세계 건축전시 중 단일 규모로 가장 큰 전시이자 수많은 평론가와 건축인들이 치열한 개념과 사유, 담론과 논쟁으로 건축의 이슈를 제기하는 자리다. 주변 국가관이나 주제관의 예리하고 참신한 주제, 유럽과 미국의 건축인들이 베니스비엔날레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고 성장하며 발언을 획득하는 치열한 과정을 지켜본다면, 단지 우리가 가진 정체성을 과거나 전통에서 빌려와 포장하고, 자기 성찰과 현실에 대한 분석 없이 순진한 얼굴을 하고 내놓은 전시에 좋은 평가를 기대하기란 불가능하다. 세계적인 건축 수준에 걸맞는 한국건축이나 건축가를 제시하거나, 한국 건축 현실에 대한 냉철한 성찰과 수준 높은 전시 방식을 좀더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은 국가관과 주제관, 수많은 초청 건축가들 사이에서 단지 참여하는 데 의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인상을 남기느냐가 중요한 전시이기 때문이다.

ⒸJinyoung Lim

+ WIDE 1210

임진영은 건축전문기자다. 월간 공간 편집팀장을 거쳐 해외건축전문지인 MARK와 AR Asian Pacific에 한국 건축에 관한 기사를 쓰고 있으며, 대중 매체에 한국건축과 도시에 대한 글을 기고하고 있다. 도시와 건축을 시민들과 공유할 수 있는 공공예술프로젝트를 기획하고 건축가 모노그래프의 에디터로도 참여하며, 현재 하와이대학 서울스튜디오의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열린 사회에 대한 열망, 건축가 유걸 인터뷰 / 아시아나 1208

빛으로 가득한 대공간, 그 안을 가로지르는 역동적인 동선으로 상식과 통념을 깨뜨려온 건축가 유걸. 그 과감한 건축 행보에는 투명한 공용공간을 통해 개인과 사회, 건축과 사회의 소통을 꿈꾸는 열린 사회에 대한 열망이 담겨 있다. 칠순을 넘긴 한국의 대표적인 건축가지만 누구보다 열린 사고를 보여온 건축가 유걸을 만나 최근 외관을 드러낸 서울시청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JINYOUNG LIM 서울시청 내부 수직정원

건축가 유걸은 올해 72세의 노장이다. 그러나 유걸 씨가 설계한 건축물를 방문하거나 대화를 나누다 보면 그의 나이를 떠올리기 어렵다. 누구보다 젊은 사고를 가졌을 뿐 아니라 과감하고 진보적인 건축을 실현해 온 한국의 대표적인 건축가이면서, 권위를 벗어나 열린 대화와 논쟁을 즐기는 자유로운 사람이기 때문이다. 건축가 고 김수근이 이끄는 공간에서 1960년대 건축 실무를 시작해 곧 미국으로 건너가 활동했고, 다시 1990년대에 한국에 돌아오는 여정을 통해, 유걸 씨는 한국건축의 인맥과 흐름에서 자유로운 독자적인 포지션을 가졌다. 1970~80년대 미국에 머물며 한국건축의 모더니즘을 타자화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었던 탓에 한국이라는 지역의 특성보다 개인의 정체성을 말할 수 있는 건축가로 자리잡은 것이다. 그의 건축물은 한국이라는 오래된 문화 안에서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확실히 함으로써 분명한 차이를 드러내는 태도를 가졌으며 그 가능성을 주목한다.

유걸 씨의 적극적인 태도와 자유로운 성품은 발상의 전환과 공간의 상상력으로 드러나곤 했다. 천정 전체를 투명한 유리로 덮은 강변교회나, 자폐아들을 위한 열린 대공간을 만들어낸 밀알학교처럼 건물에 밝고 투명하며 과감한 공간을 담아냈고, 이 대공간을 램프나 계단 같은 주요한 동선으로 극적으로 가로질렀다. 이를 통해 건축가는 안무를 짜듯 사람들의 흐름을 이끌어내곤 했다. 중요한 것은 내외부의 경계를 넘어서 건물 안으로 도시의 거리를 연장되고 건물 안에 개방된 공간을 품는 것이었다. 유걸 씨는 이 밝고 투명한 공간을 통해 개인과 사회가 만나고 도시와 건축이 소통하는 개방된 공용공간을 꿈꾼다.

“사람들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반영하는 불특정한 열린 공간에 관심이 많아요. 전 광장 같은 것을 좋아해요 모르는 사람들이 만나서 같이 사는 모양새, 그게 늘 중요한 그림이에요. 광장은 술을 마시든, 책을 읽든, 모르는 사람과 대화할 가능성이 넓어요. 모르는 사람과 대화를 하는 것은 곧 자신의 생각을 넓히는 것이죠. 그게 도시 생활이 주는 잠재력이 아닐까요. 열린 사회, 열린 공간을 말하는 이유는 바로 그거에요. 저는 조그만 방에서는 잘 살 수 있지만 조그만 사회에서는 살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웃음)” 그가 건축에 담아내고자 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 결핍된 한 면인지도 모른다.

ⓒJINYOUNG LIM

“건축의 형태는 그열린 공간의 결과로 드러나는 보조장치일 뿐이에요. 서울시청사 역시 제가 관심을 둔건 서울광장이었어요. 서울광장의 장소성을 만들기 위해 건물을 수평적으로 낮게 앉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시청사의 형태 역시 광장과의 관계를 고려해 나온 결과예요.”

신청사와 광장의 관계를 만들어주고 싶었던 건축가는 앞에 놓인 구청사를 극복하기 위해 돌출부를 내었다. 구청사의 사이 공간과 광장과의 관계를 고려해 건물 전면은 움푹 들어나거나 불룩한 자유곡면이 되었다. 형태는 역동적이었지만 정작 건축가가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내부였다. 건물 위쪽에 세 개의 덩어리가 떠있고, 투명한 아트리움을 수직적으로 세워 공용공간을 맨 위까지 끌어올렸다. 시청의 사무공간은 폐쇄되더라도 심리적으로 열린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 시민들의 동선을 자연스럽게 시청의 최상부까지 다다르게 한 것이다.

ⓒJINYOUNG LIM

지난 5월 가림막을 걷어낸 후 아직 내부가 공개되지 않은 서울시청사의 외관에 대해 시민들의 호불호는 뚜렷하게 엇갈렸다. 쓰나미가 몰려오는 것 같은 형태나 시각적으로 강한 인상, 덕수궁에서 바라본 측면의 어설픈 디테일이 도마에 올랐다. 낯섦과 생경함을 넘어서는 아쉬움이었다. 물론 당선안이 결정되었을 때, 형태에 의존한 상징과 오브제화에 대한 비판과 염려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딱히 형태가 달라진 것은 아닌데 왜 어색함이 극대화되었을까.

“내부 공간이 그대로 보여서 투명한 공간으로 읽힐 수 있도록 하는 게 디자인 의도였는데, 형태만 그대로 완성되었어요. 내부에는 떠있는 세 개의 공간이 있는데, 튀어나온 측면에선 형태에 대한 배경이 전혀 읽히지 않으니 당연히 이상해 보여요. 이런 디테일을 해결하려는 의식이 없었던 것 같아요. 커튼월에 필요한 열처리를 하면서 어떻게 투명하게 보일 것인가를 해결하는 게 디자인이죠.”

ⓒJINYOUNG LIM

건축가 유걸이 서울시청사 공모전에 당선된 것은 2008년의 일이다. 이미 아이디어공모전과 턴키를 통해 삼우와 희림의 공동설계안이 결정된 상태였다. 5번의 문화재 심의부결과 천편일률적인 오피스 타워에 대한 반대여론에 맞닥뜨리면서 서울시청사는 디자인 논란에 휩싸였다. 결국 다시 한국의 대표적인 건축가들을 초청해 지명설계를 진행했고 유걸 씨가 당선되었지만, 기본 설계에 해당하는 당선안만을 넘긴 채 시청사는 그의 손을 떠나 실현되기 시작했다. 이후 지난해 6월에 이르러서야 디자인총괄이라는 명목으로 다시 참여할 수 있었고 건물은 이미 2/3가 진행된 상태였다. 실현 단계에서 내외부 공간의 투명성, 곡면과 측면이 만나는 부분, 내부의 덩어리가 튀어나오는 측면 디테일의 엉성한 처리가 아쉬운 이유다.

“아마 김수근 씨의 왜색시비 이후 이렇게 관심이 높은 건 처음이 아닌가 싶어요. 아, 사람들이 형태에 관심이 더 많구나, 형태가 중요하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죠. 사실 저는 건물의 모양을 형태적인 스타일로 만드는 것에 비판적인데, 거꾸로 그 덫에 걸렸어요(웃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형태는 주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사는 게 목적이지 보는 게 목적은 아니죠. 건축적인 감동은 형태가 주는 감동과 완전히 달라요.”

그래도 그는 지금의 현상이 무관심보다 낫다고 말한다. 이를 통해 새로운 논의와 담론이 나올 수 있다면 말이다. “쓰나미라는 표현은 굉장히 좋은 표현 같아요. 다만 ‘이상하다’라는 건 가치판단이에요. 그 가치판단의 기준이 익숙함이라는 편견에서 자유로웠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내부의 수직적인 역동성이 읽히는 것, 지금은 그게 가장 기본적인 목표입니다.”

ⓒJINYOUNG LIM

자신의 손을 떠난 서울시청사를 바라보며 유걸 씨는 건축에서 설계의 가치에 대해서도 고민했다고 한다. 왜 꼭 건축가의 손으로 자신의 건물을 완성해야 할까.

“설계할 때 처음 콘셉트를 만들어요. 거기에는 구체화되지 않은 꿈도 있고 확실히 의식한 의도가 있어요. 그 의도를 건축해나가는 과정이 디자인 발전과정인데 그 과정이 어려워요. 즉 건축가의 명확한 의도와 이를 실현할 기술이 필요해요. 그런데 기술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게 참 많아요. 그때 필요한 것이 바로 의지입니다. 서울시청사가 구현되는 과정에는 그 세 가지가 다 없었던 것 같아요. 지식이 있고 의지가 약할 때 디자인을 쉽게 풀어내죠. 내가 좋은 건축가라서가 아니라, 이 의도와 지식과 의지를 모두 담아내기 위해서 건축가가 자신의 건물을 완성하는 것은 중요해요. 더 중요한 건 건축가 스스로 건축가들이 만들어내는 가치가 어디에 있는가를 명확히 알아야 하구요.”

우여곡절 끝에 완공될 서울시청사는 시민들에게 또 건축가 유걸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까. “ ‘2012년 한국에서 유걸이 지은 집이다’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만약 2020년에 어떤 건축가가 서울에 집을 짓는다면 사회문화적인 컨텍스트나 건축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지길 바라죠.” 건축은 한 시대의 사회문화적인 총합이라는 말이 있다. 유걸 씨의 말처럼 서울시청사는 2012년 한국 사회의 지향점과 가치, 구조와 모순을 반영하는 거울처럼 서있다.

ⓒJINYOUNG LIM

글_ 임진영 건축전문기자

전문성과 대중성, 건축전문지의 고민

Image전문지의 기자는 멀티플레이어다. 그 분야에 전공 지식이 해박해야 하고, 네트워크도 탄탄해야 한다. 건축전문기자로 치자면, 실무경력이나 이론이 탄탄한 건축가와 눈높이를 맞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수준으로 늘 공부를 해야한다. 건축물을 보는 안목이 있어야 하고, 그 건축물의 특징과 건축가의 고유한 성향을 읽어내 그것을 전달할 단어들도 풍부해야한다. 그뿐인가. 건축물을 촬영하는 건축사진작가와 발 맞추어 건축 사진을 읽는 눈도 길러야 한다. 그것을 지면에 풀어낼 때는 건축물을 읽어내는 눈과 사진을 읽는 눈이 함께 어우러져 논리정연하게 풀어가야 한다. 그리고 인터뷰나 적절한 대담자를 찾아 기획을 풍부하게 해야 한다. 이슈를 가지고 특집이라도 할 경우에는 주제에 걸맞는 필자부터 자료 수집, 정리, 적절한 이미지 찾아 내며, 특별한 경우 사진작가와 함께 적절한 이미지를 만들어 촬영하기도 한다. 어떤 이미지를 크게 쓸 것인지 미적인 안목도 있어야 한다. 기획부터 취재, 편집에서 교정 마무리까지 전 과정을 책임지는 게 건축전문지 기자의 영역이다.
여기에 편집팀장의 역할까지 포함하면, 개별 기자의 취재 방향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바로잡아주거나 정보를 주어야하고, 원고를 봐주고 전체 구성에 논리적인 헛점이 없는지 꼼꼼히 검토해야하며, 마지막 레이아웃에서 흐트러짐이나 느슨함 같은 것은 없는 지 꼼꼼하게 확인하고 교정까지 마무리를 해야하니 늘 머리가 터지기 마련이다. 디자이너와 편집 컨셉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사진의 색감이나 전체 퀄리티를 위해 마무리 인쇄까지 긴장을 멈출 수 없다.
<유혹하는 에디터>를 집어들었을 때, 궁금했던 것은 주간지와 일간지의 편집 노하우였다. 톡톡튀는 주간지의 편집에는 아름다운 작품집 성향에 가까운 건축지와는 다른 아삭한 지적 유희가 있다. 현장에서 부딪히며 몸으로 체득한 10여 년의 노하우. 대개 아는 내용이었지만 눈길을 끈 것은 맘껏 시도해보지 못했던 기본적인 원칙들이었다. 바로 독자에게 친절하냐는 대목. <공간>을 떠난지도 벌써 2년, 워낙 점잖은 전문지에 속하는 공간지는 그 성격상, 꽤 잘난 척하는 잡지, 불친절한 잡지로 유명했다. 기자들이 취재기 대신 건축가가 직접 쓸 소묘로 건축물을 소개해야 했던 2008년부터 그 딱딱함과 소통 불가능은 상승 곡선을 타기 시작했다. 도무지 풀어서 소개하는 텍스트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간혹 앞뒤 맥락 없이 좋은 거 뽑아봐 라고 할 땐, ‘그럼 네가 보여줘봐’라며 으르렁- 해버리고 싶을 때도 있었다.
전문성과 대중성, 물론 이것은 전문지가 꼭 잡아야할 두마리 토끼는 아니다. 공간이라는 전문지가 행복이 가득한 집이나, 레몬 트리가 될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래도 누군가 건축이라는 분야가 궁금했을 때, 건축전문지를 집어 들었을 때, 적어도 그게 무슨 말인가는 알 수 있어야하는 데 말이다. 책 펴놓고 공부할 마음이라도 생기게 말이다. 그 정도의 친절함은 제시했어야 하는데, 그 전달의 노하우가 아쉬웠던 것같다.
책을 읽으며 전혀 예상을 뛰어 넘는 발상과 상상력에는 동의를 하다가도 몇몇 부분에서는 뭐 썩- 잘 모르겠다 정도의 결과도 없지 않았다. 그렇지만 정작 내가 그 제목 뽑기에 동참했을 때 왠 걸, 정말 구태의연하고 예상가능한 착한 제목들만 나오는 바람에 혼자 소리죽여 웃고 말았다. 점잖은 제목에 넘 길들여졌어. 이젠 말랑말랑하고, 위트있고, 생기있는 제목들을 뽑아낼 그날을 준비할 때다. 당신의 도시, 동네와 골목, 길과 사람에 대해 정곡을 찌르며 키득댈 수 있는 제목들. 이제는 좀 목에 힘 빼고, 어깨 긴장도 쫌 풀고, 느슨하지만 예리하게 벼려야 할 때.
마지막으로 저자의 십여년동안 이렇게 쌓인 노하우가 만만찮은데, 내 십 여년은 무엇을 쌓았을까 반성도 해가며, 책을 덮었다. 역시 방법은 넘어지더라도 부딪히고 깨져가며 달려가야한다는 진리에 끄덕. 쌓여야 정리도 하는 법이다.

건축문화에서 만든 졸업생 작품집의 저작권에 관한 서울대생의 문제제기

http://www.facebook.com/#!/jinkyoung.jink/posts/398134053583595

건축문화에서 만든 졸업생 작품집의 저작권에 관한 서울대생의 문제제기를 보니 터질 게 터졌구나 싶다. 자신의 저작물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용기를 지지한다. 사회는 점점 더 투명해지고 성숙해가는데, 건축계는 여전히 기존 방식을 답습하고 있으니 앞으로 이런 일들이 많아지지 않을까.

다만 단행본과 잡지는 구분해서 접근해야 한다. 전문지의 경우, 그 분야의 소식을 공유하고 취재를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건축가에게 원고료를 지급하지 않는다. 도무스, 마크, 아키텍처럴 리뷰 등 해외 잡지 역시 마찬가지다. 다만 그 해당 건물을 취재하는 필자에게 원고료가 지급되며 사진작가의 사진에 사용료가 지급된다. 해외에서는 콘텐츠를 취재해서 다루는 것이 보편적인데, 한국에서는 기자들이 건물을 취재하게 하지 않고 건축가의 소묘를 그대로 실고 비평을 따로 붙이는 경우가 많아서 그에 대한 원고료 개념이 생길 수도 있겠다. 그러나 따로 주제에 대한 원고를 청탁하지 않는 한 대부분 제공 자료로 본다. 잡지에서 고료를 지급하는 대상은 대담, 컬럼, 특정 주제의 청탁 원고, 비평, 번역, 사진 등에 해당한다.

이번 문제의 핵심은 잡지에 건축관련 콘텐츠를 게재할 때 1회에 한해 사용할 것인지, 후에 2차 생산물(단행본)에 사용 허가까지 할 것인지에 대해 동의를 구해야 한다는 것. 2차 생산물을 만들 때 건축가들(학생 포함)에게 사용 허가를 묻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사실 외국의 저널에는 게재와 관련해서 저작권의 범위를 적용하는 각자의 양식이 있다. 절차상 생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말이다. 이런 기본도 못 지키는 출판사나 잡지사가 많다는 게 안타깝지만, 어쩌면 그건 건축계 전체의 문제일 수도 있다. 사진작가의 저작권, 원고의 저작권, 디자인 저작권 모두 잘 존중되고 지켜지는 분위기였다면 이런 문제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 학생들의 문제제기가 소중하고 신선한 것처럼, 그들이 기성건축가로 활동할 때에도 지금의 마음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특히 건축사진작가의 사진 저작권과 원고의 저작권, 건축 설계 크레딧 모두 동의를 얻고 존중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완결된 형태보다 내재된 의도를 드러내는 작품집

말레이시아의 건축가 Kevin Mark Low의 작품집 <small projects>. 건축전문사진작가의 사진 없이 건축가의 사진, 글, 스케치, 도면으로 꽉 채워진 작품집. 오죽하면 크레딧 표시에 AUTHOR / PHTOGRAPHY / tYPOGRAPHY / DESIGN: KEVIN MARK LOW라고 써 있다.

자신의 작업을 가장 잘 아는 것은 건축가 자신이다. 무엇을 어떻게 의도했고 어떻게 해결했고 그 결과가 어떠했는지에 대한 과정을 가장 정확하게 아는 목격자인 셈이다. 유일한 목격자가 스스로 기록자가 되었을 때, 자료는 명확해지고 힘을 갖는다. 그렇다고 자료의 중요도에 따라 가감하고 해석하고 위계를 설정하는 편집자의 시선이 필요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제대로 각이 잡힌 전문 사진은 하나도 없지만, 사진 하나하나에 건축가의 의도가 담겨있고 그 옆에 스케치와 글로 자세한 설명을 더하고 있다. 싱크대 선반, 욕실 유리문에 대한 디테일 설명가지 덧붙였으니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갈 듯. 무엇보다 편집증적인 자료 기록에 놀랍고 건축물의 세세한 부분에 자신의 의도와 생각을 모두 담아 하고싶은 말이 넘쳐난다는 게 놀랍다. (같은 이유로 너무 세세한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어서 아쉽기도.)

무엇보다 보여주려는 대상이 건축물의 완결된 형태에 있지 않다는 태도 자체가 매끈한 작품집보다 훨씬 더 설득력있다. 힘 있는 건축사진과 정돈된 도면, 잘 계획된 스케치를 보여주는 작품집도 성격에 따라 의미가 있지만, 폼 잡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그런 면에서 <small projects>는 작은 프로젝트라 하더라도 그 안에서 담긴 건축적인 내용을 끄집어내는 것이 얼마나 설득력있는가를 잘 보여주는 로컬 아키텍트의 작품집이다. 건축가에게나 편집자에게나, 저널에서 보여주는 컨셉 스케치, 도면, 사진, 소요, 개요의 정형화된 패키지 대신 다른 방식으로, 다른 도구로, 다른 이야기를 보여주는 시도가 필요한 때다.

노만 포스터, 우주선 애플호를 띄우다

애플 사옥 조감도, 노만 포스터

아이폰을 처음 사용했을 때 놀라움은 기계 자체 때문이 아니었다. 손 안에서 접속한 트위터, 페이스북, 아이튠즈와 앱스토어의 수많은 어플리케이션과 음악, 방송은 그야말로 새로운 세상이었다. 언제 어디서든 수많은 네트워크와 콘텐츠에 접속 가능한 상황. 아이폰은 쉽고 단순한 방식으로 이를 연결해주는 도구였고 그 세상은 애플이 만들어낸 하나의 생태계였다. 물론 아이폰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아이폰 뿐만 아니라 애플의 모든 제품들이 그랬다. 겉으로 드러난 하드웨어는 언제나 간결했다. 그 결과 디자인도 간결했다. 간결한 만큼 아름다운 유선형의 형태는 소유자를 뿌듯하게 하는 자부심도 주었다. 그 배경에는 새로움을 추구하며 간결함을 실현하기 위해 극한까지 밀어붙인 스티브 잡스가 있다. 우주를 놀라게 할 듯한 발상과 새로운 것을 꿈꾸며 애초에 불가능이나 한계를 염두에 두지 않고 달려갔던 그의 열정은 혁신과 창의, 감성이라는 말로 대변되었다. 스티브 잡스는 단순한 기계 자체를 만든 것이 아니라 기계를 통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었고, 우리의 감성을 건드렸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가 ‘기계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라고 말한다.

애플 사옥, 노만 포스터

지난 해 10월 스티브 잡스가 세상과 안타까운 이별을 고한 후, 인터넷에서는 애플 사옥의 조감도와 도면이 화제가 되었다. 스티브 잡스에 대한 애도의 여운이자 그가 만들고자 했던 애플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다. 쿠퍼티노에 지어질 예정인 이 사옥에 대해 스티브 잡스는 ‘우주선이 착륙한 것 같은 훌륭한 사옥’이라는 표현으로 사람들에게 또 다른 상상력을 불러일으켰다. 넓은 대지 위에 낮게 깔린 4층 높이의 단순한 원형 띠 모양 건물이다. 전면 유리의 사용으로 투명함을 강조한 이 건물을 설계한 사람은 영국의 대표적인 건축가 노먼 포스터다.

애플 사옥, 노만 포스터

노만 포스터는 1980년대 IBM 사옥, 상하이 뱅크 등 하이테크 건축으로 이름을 알린 건축가다. 하이테크 건축은 당시 최신 기술과 재료를 건축 디자인과 결합해 표현한 양식으로, 유리의 투명성과 철, 알루미늄과 같은 금속 재료를 사용하여 구조와 설비를 노출하는 기계 미학을 드러내는 사조다. 그러나 노만 포스터의 건축이 단순히 기계 미학을 드러내는 것은 아니다. 코메즈 뱅크 본사 사옥이나 거킨 빌딩으로 불리는 스위스 리 빌딩, 런던 시청사와 허스트 타워 등 독특한 형태와 강렬한 구조를 드러내는 그의 건축은 생태학적인 접근과 자연친화적인 관점, 그리고 기술을 통해 친환경 건축을 실현한 결과물이다. 거킨 빌딩의 독특한 형태는 바람의 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한 결과이며 런던 시청사의 기울어진 원형돔은 일조량을 정밀하게 계산해 직사광선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다. 허스트 타워의 독특한 패턴은 환기와 구조를 고려한 대각선 구조 시스템을 그대로 노출한 것이기도 하다.

당시만 해도 오피스타워는 밀폐된 공간 안에서 모든 설비를 시스템으로 통제하는 것이야말로 기술의 진보라고 자랑했지만 포스터는 모든 것을 기술적으로 통제하는 방식 대신 자연 환기와 자연 통풍, 실내 정원을 통해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쾌적함을 높이는 친환경 건축을 추구했다. 자연광을 극대화하기 위해 유리를 사용해 밝고 투명한 공간을 만들어내면서도 그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온도 상승과 직사광선의 문제를 정교한 센서와 자동 패널장치, 태양열전지 같은 테크놀로지로 보완했다. 그는 생태학적인 철학을 바탕으로 예술과 기술을 결합한 건축을 만들어 온 건축가다.

애플 사옥 평면도, 노만 포스터

지역과 환경에 따라 자연과 공생하는 유기체로써 건축을 바라본 노만 포스터와 스티브 잡스가 함께 손을 잡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휠 하나면 모든 것이 작동되는 아이팟처럼, 넓은 자연의 땅에 그린 단 하나의 링. 넓은 대지 위에 단지 20%만을 건축이 점유하고 자연에 둘러싸이게 한 것이나, 커다란 타워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보다 대

애플 사옥 평면도, 노만 포스터

지에 낮게 깔린 커다랗고 투명한 원 하나를 그어 생태학적인 방식을 추구하는 설계안은  서로의 철학과 방식에 가장 잘 맞는 결과물이었을 것이다. 특히 겉으로 단순해 보이는 이 투명한 유리 건물은 높은 완성도를 기대하게 하는데, 에너지 낭비의 원흉으로도 꼽히는 전면 유리의 사용을 세밀하고 정교한 기술로 친환경적으로 보완해온 노만 포스터의 태도와 극한의 디테일을 추구해온 애플의 방식 때문이다.

원은 중심에서 가장 최단거리를 이은 도형이자 군더더기 없는 완결체다. 중심이 없으며 수평적인관계를 드러내기도 한다. 그렇다고 추상적인 도형이 꼭 합리적이며 기능에 적합한 것은

애플 사옥 단면도, 노만 포스터

아니다. 당장 사용자의 동선부터 해결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애플과 노먼 포스터의 행보로 볼 때, 그 간결함과 완벽함을 실현하기 위한 기술적인 보완과 수고로움은 어쩌면 당연한 일처럼 보인다. 한 예로 스티브 잡스는 15개의 유리판으로 만든 뉴욕 애플스토어의 투명한 큐브를 단 4장의 유리판으로 실현시키고자 집요한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다. 결국 9개의 유리판으로 실체를 드러냈지만 잡스의 간결함에 대한 추구는 그가 꿈꾸는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기술을 동원하는 분명한 태도를 보여준다. 노먼 포스터 역시 어떤 디테일도 중요하지 않는 것이 없다는 잡스의 말을 공유하며 건축주 이전에 열정과 창의력으로 무한한 가능성을 이끌어내는 그와의 작업을 기리고 있다. 아마도 애플 사옥은 이면에 가장 복잡하고 새로운 기술을 동원한 가장 간결하고 투명한 건물로 실현될 것이다.

애플 사옥, 노만 포스터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아직 계획단계에 머무르는 도면, 그것도 전문적인 정보를 담고 있는 건축 도면에 수많은 상상력을 담고 있는 사람들이다. 수많은 상상력을 이끌어낼 수 있는, 수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토대가 바로 애플의 힘, 스티브 잡스의 힘이 아닐까. 스티브 잡스가 마지막까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기술로 만들어낼 수 있는 세상에 대한 우리의 꿈이 아닐까?

글_임진영(건축전문기자)

+MUINE 1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