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하는 오브제, 소통의 도구가 되다 / 서울대미술관

‘koolhaas’라는 브랜드는 건축가 렘(Rem)의 성을 딴 것이라고 했다. 건축을 하는 사람들에게 손에 꼽힐 이 이름을 T-셔츠에서 발견했을 때 반가움을 넘어서는 놀라움이 있었다. 우리나라에 알려진 건축가가 몇 명이나 되던가. 이제는 전설 속 거인이 된 고 김수근 씨 정도나 TV 프로그램에서 접했을까. 이슈가 되는 대형건축물을 설계하지 않고서야 (특히 우리나라의) 현대건축가 이름은 알 리가 없지 않은가. 신문과 방송에서부터 소소한 동창회 모임에서까지, 건축이란 분야가 부동산과 아파트, 건설 분야를 빼고는 할 이야기가 없는 게 우리 현실이기도 하니 말이다. 그러니 건축가의 이름-설령 외국건축가라 할지라도-이 버젓이 브랜드가 되어 걸린 상황이 못내 신기했다고 해야 할까.

서울대미술관, 렘 쿨하스 / 사진_김용관

렘 콜하스의 존재는 그렇게 독특하다. 건축의 대중성과 유연성을, 도시의 자율성과 불확정성을 말하는 그는 현대건축의 흐름을 주도하는 몇 안 되는 건축가 중 하나다. 그의 실험적인 접근과 발상은 수치, 분석 등 리서치를 통해 내린 명쾌한 논리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힘을 얻는다. 지어진 건물보다 지어지지 않은 계획안을 통해 자신을 알려온 건축가이고 수많은 데이터와 이미지를 담은 책을 통해 전 세계 건축인들의 시선을 사로 잡아온 건축가다. 대중적으로 프랭크 게리만큼 잘 알려진, 또 지지를 받는 ‘아이콘’과 같은 존재다.

하얀 철골이 만들어내는 트러스구조는 반투명 유글래스 너머로 고스란히 노출되고 건물의 저층부가 사선으로 예리하게 도려내어진 건물, 마치 땅 위에 떠있는 듯 부유하는 커다란 정육면체는 가벼우면서 견고하고, 견고하면서 경쾌하다. 서울대 미술관은 한국에서 지어진 렘 콜하스의 두 번째 건물이다. 그의 첫 작업은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장 누벨과 마리오 보타와 함께 선을 보였다. 삼성아동교육문화센터에서 그는 과감하게 풀어낸 장 누벨의 현대미술관과 고전적인 자세를 보인 마리오 보타의 고미술관 사이에서 배경이 되었다 기능과 외부동선을 풀어내고 조율하는 역할이다. 그 인연은 삼성문화재단이 짓고 서울대에 기증된 서울대미술관 설계로 이어진다.

렘 콜하스의 미술관. 이 아이콘을 선택했을 때, 우리가 익히 접했던 미술관의 전형- 빛의 농도를 조절하기 위해 측창과 천창을 내고 형태 미학에 충실한 정제된 공간-은 내쳐진 셈이다. 물론 최근 대안공간을 내세운 실험적인 미술전시공간이 등장하고 있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미술관은 예술품과 관객의 고정적인 대응방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서울대 미술관은 렘 콜하스라는 건축가를 선택함으로써 엄숙하고 정적인 공간 대신, 불확정적인 프로그램을 소화하고 빠른 변화에 대응할 수 있으며, 다양한 목적에 부합할 수 있는 유연한 공간을 선택한 것이다. 이는 동시에 대중을 위한 미술관을 의미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서울대 미술관에서 가장 중요하게 들여다봐야 할 것은 눈을 사로잡는

서울대미술관, 렘 쿨하스 / 사진_김용관

 오브제가 아니라, 바로 ‘소통’을 위한 설계다. 캠퍼스와 지역 커뮤니티의 관계를 연결하는 것. 그것은 미술관의 출발점이자 설계의 출발이기도 했다. 대학과 지역주민과 문화적인 교류 공간을 조성하기 위한 고민은 교문과 가장 가까운 부지를 선택하고, 열린 문화공간을 만들기 위한 노력으로 이어졌다. 10년의 진행과정에서 세 차례의 설계 변경을 하는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변하지 않은 개념은 바로 이 지역과 캠퍼스를 소통하게 하는 것이었다. 초기안의 골짜기 형상을 잇는 브릿지 형태는 지역과 대학을 잇는 다리를 연상시켰고, 최종안의 선택도 건물의 뒤로 면하고 있는 도로와 캠퍼스 내부를 잇는 동선으로 소통을 의도했다.

경사지를 파내어 평지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정육면체를 대지에 그대로 얹고 경사지를 따라 지면과 맞닿은 부분을 들어내는 것, 결국 건물의 형태를 만들어내는 과감한 사선은 보행자를 위한 길이 관통시킨 개념에서 나온 것이다. 경사지를 그대로 살리면서 캠퍼스의 내부와 외부도로를 연결하는 이 개념은 미술관 전면의 넓은 마당과 외부도로 쪽에 조성될 문화공간으로 강조되었다. 건물의 정면도 경쾌하게 비튼 사선으로 가볍게 들려 있는 모습이 된다.

이 건물의 형태를 뒷받침하고 있는 것은 중심부의 콘크리트 구조체를 두고 캔틸레버 형식을 취한 구조다. 건물 입면에서 반투명한 U글래스에 패턴처럼 사선을 긋는 트러스는 이 캔틸레버 구조를 가능하게 한다. 이 형태를 두고 렘은 고인돌을 비유하기도 했다. 흥미로운 것은 명확한 구조가 그대로 미술관의 구성 요소와 기능적인 요구 사항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인데, 경사진 지형을 따라 사선으로 치닫는 부분은 강당과 오디토리엄으로 쓰이는 교육공간이며, 중심부의 콘크리트 구조체는 도서관, 그리고 상부에 가볍게 뜬 부분이 전시관이 된다.

서울대미술관, 렘 쿨하스 / 사진_김용관

땅과 맞닿는 곳을 보행자를 위한 길로 내어 주었다면, 이 경사지를 따라 난 건물의 사선은 내부에서 계단형 강의실과 계단이 된다. 미술관은 램프를 따라 들어가는 입구를 지나 강당과 오디토리엄을 지나 3층의 전시공간으로 계속 이어지고, 고급 마감재가 품어내는 아우라를 빌리지 않고도 실용적이지만 신선한 내부 공간을 선사한다.

그리고 느릿느릿 거니는 끝에 3층부터 지하층을 수직으로 관통하는 유일한 공간, 로비 공간을 만난다.(이곳은 외부에서 캔틸레버 형식을 지지하는 콘크리트 구조체에 해당하는 곳이다. 도서관으로 예정되어 있지만 아직 로비공간으로만 쓰인다.) 폴리카보네이트로 마감된 이곳은 중력의 힘이 미치지 않는 듯 중성적인 공간감으로 충만하다. 사선으로 꺾여 올라가는 계단은 허공에 떠있는 듯 자유롭게 상승한다. 마치 이곳을 위해 절제한 듯 콘크리트의 중량감마저 사라지게 하는 듯한 이곳은 무중력의 자유로운 공간을 만들어내며, 미술관의 하이라이트가 된다.

서울대미술관, 렘 쿨하스 / 사진_김용관

개관식이 열렸던 2006년 6월만 해도 가장 중요한 개념이었던 소통을 위한 길은 열리지 않은 상태였다. 렘 콜하스 특유의 유연한 대응방식은 건물의 구성과 동선만으로 권위를 벗어던지고, 친밀하고 열린 미술관을 만들어 냈고, 서울대 미술관은 그 의도대로 캠퍼스의 경계를 허물고 지역주민과 소통할 준비를 마친 셈이다. 그와 함께 권위적이고 정적인 미술관의 벽도 허물어냈다. 그리고 누구든 접근할 수 있고, 체험할 수 있고, 주눅 들지 않고 미술을 접할 수 있는 이 미술관은 건물의 저층부를 관통하는 이 길을 따라 사람과 사람이 넘나들 때 완성될 것이다. 

글_임진영 기자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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